NH농협금융지주가 가상화폐 등 디지털자산 보관 및 관리사업에서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면서 독자적으로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추진하던 NH농협은행도 사업을 확장하는 데 고심하게 됐다.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은 가상화폐 등 디지털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는 보관자산을 활용한 가상화폐 결제 및 정산, 가상화폐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등 여러 방면으로 운영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 권준학 NH농협은행 은행장.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은 은행의 수수료 수익을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 여겨지지만 자금세탁 이슈 등 가상화폐와 관련한 리스크는 은행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주 차원에서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NH농협금융이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NH농협금융지주는 전자결제대행업자인 NHN한국사이버결제와 함께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준비하다 최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NHN한국사이버결제 관계자는 "최근 트렌드라 할 수 있는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놓고 올해 들어 NH농협금융지주와 논의를 이어오다 최근 관련 논의를 전면 중단했다"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 관계자는 "커스터디사업을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다"며 "현재 내부적으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금융지주가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 진출에 신중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최근 가상화폐와 관련한 리스크 우려가 커지면서 이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3월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가상화폐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가는 금융회사 등에 실명계정을 이용해 금융거래를 해야한다.
이와 함께 은행의 책임이 커졌다.
은행은 가상자산사업자가 고객 예치금을 분리·보관하는지,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을 획득했는지, 고객 거래내역을 분리해 관리하는지 등을 확인해야한다. 가상자산사업자가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절차와 업무지침 등을 준수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은행의 책임이 커진 만큼 은행들은 가상화폐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내주는 것도 꺼리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가 가상화폐와 관련한 전략을 선회하면서 NH농협은행은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추진하는 데 지주와 다른 전략을 취하는 것은 부담될 수 있다.
NH농협은행은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시스템 도입시점에 맞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블록체인 기업 헥슬란트, 법무법인 태평양과 함께 디지털자산 컨소시엄을 꾸리고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논의를 이어오고 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가상자산시장 리스크와 불투명성 때문에 당장 커스터디사업에 속도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계속 준비하며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이 직접 나서지 않고 별도 법인을 설립하거나 지분투자 등을 통해 커스터디사업을 진행하더라도 가상화폐와 관련한 은행의 책임이 커져 리스크를 완전하게 없애기는 힘들다는 점도 NH농협은행에 부담이다.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에서 자금세탁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진다면 은행의 브랜드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투자 열풍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면서 국내 은행들이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 진출 여부를 놓고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에 진출하지않은 은행들이 이 시장에 먼저 진출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움직임을 살펴보며 시장흐름을 주시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합작법인 한국디지털에셋을 설립해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시작했다. 신한은행도 디지털자산 관리 전문기업인 한국디지털자산수탁에 전략적 지분투자 형태로 참여하고 있다.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은 줄어드는 은행의 수수료 수익을 다시 늘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시장이 초기단계이고 국내에서 가상화폐 투자에 실제로 뛰어든 기관투자자들이 많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가상화폐 커스터디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는 시선이 늘고 있다.
블록체인기술 및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 등에 가상화폐 커스터디사업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측면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