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회사 글로벌파운드리(GlobalFoundries)가 기업공개를 준비한다.
글로벌파운드리는 기업공개로 확보한 자금을 미세공정 도입에 투자해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를 따라잡아야 하는 동시에 글로벌파운드리의 추격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 토마스 코필드 글로벌파운드리 CEO.
28일 외신들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회사 모건스탠리가 글로벌파운드리의 상장을 위한 기초 수요예측(Initial public offering) 작업에 들어갔다.
기초 수요예측은 본격적으로 공모를 진행하기에 앞서 공모수요를 가늠하는 기업공개의 준비 작업이다.
블룸버그는 반도체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글로벌파운드리는 기업가치가 최대 300억 달러(34조 원가량)에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며 “다만 아직 기업공개에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전자기술 전문매체 WCCF테크는 글로벌파운드리가 상장에 성공하면 7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 확보에 도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매체는 “7나노 이하의 공정에는 극자외선(EUV)을 사용하는 최신 설비가 필요하다”며 “글로벌파운드리가 이 분야에 진출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며 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면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회사) AMD로부터 CPU(중앙처리장치) 물량을 적지 않게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선이 반도체업계에서 나온다.
AMD는 과거 글로벌파운드리 지분 14%를 보유한 관계회사였다. 당시 글로벌파운드리는 AMD의 파운드리사업부 역할을 수행했다.
2012년 AMD가 글로벌파운드리 지분을 모두 매각해 지분관계는 사라졌으나 여전히 AMD는 글로벌파운드리에 12나노미터보다 회로 폭이 두꺼운 공정이 요구되는 반도체를 대부분 발주하고 있다.
현재 AMD의 주력 CPU는 7나노 공정이 적용된 PC용 4세대 CPU ‘젠(ZEN)3’ 시리즈로 TSMC가 위탁생산을 맡고 있다.
이 제품은 극심한 물량 부족을 겪으며 지난해 말 국내기준으로 유통매장 판매가격이 정가의 2배를 웃돌기도 하는 등 제품 공급과 관련한 이슈가 불거졌다.
AMD로서는 TSMC 이외의 파운드리회사에 물량을 발주하는 것을 고려해봄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파운드리가 기술력 확보에 나서는 것이다.
AMD는 세계 CPU시장에서 인텔을 추격하기 위한 고삐를 한창 당기고 있다.
시장 조사기관 패스마크에 따르면 인텔과 AMD 두 회사의 글로벌 CPU시장 점유율 격차는 2017년 1분기 63.8%포인트까지 벌어졌으나 2021년 1분기 2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서버와 노트북을 제외한 데스크톱용 CPU만 놓고 보면 올해 1분기 AMD가 시장 점유율 50.7%로 49.3%의 인텔을 제쳤다. 2006년 1분기 이후 60분기 만에 처음으로 AMD가 인텔에 앞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AMD는 TSMC 7나노 공정의 최대 고객사일 정도로 TSMC 의존도가 높다”며 “글로벌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AMD로서는 TSMC와 물량을 나눠 발주하는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시장 입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글로벌파운드리의 7나노 공정 확보 여부를 주시해야 한다는 시선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애초에 AMD로부터 파운드리 물량을 수주하지 않는 만큼 글로벌파운드리의 성장으로 직접적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파운드리가 AMD로부터 CPU 물량을 수주하는 것은 삼성전자로서도 좌시할 수 없는 사안이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파운드리시장에서 TSMC가 56% 점유율로 1위, 삼성전자가 18% 점유율로 2위에 올랐다. 글로벌파운드리는 7% 점유율로 4위다.
삼성전자에게는 따라잡아야 할 TSMC보다 추격하는 글로벌파운드리가 더 가까이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기술력으로만 따지면 글로벌파운드리의 7나노 공정 확보는 삼성전자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글로벌 파운드리시장에서 5나노 공정의 양산에 들어간 파운드리회사는 삼성전자와 TSMC뿐이다. 7나노로 기준을 낮춰도 인텔이 기술력을 확보했을 뿐 양산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
심지어 삼성전자와 TSMC는 내년 3나노 공정의 도입을 시작한다. 반도체업계는 두 회사가 주도하는 파운드리 공정 미세화를 다른 회사들이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기술 고도화와 별개로 글로벌 CPU시장에서는 7나노 공정도 의미가 상당히 크다. AMD가 주력으로 내세우는 제품의 공정일 뿐만 아니라 최근 인텔도 7나노 공정을 적용한 CPU칩의 설계를 마쳤다.
▲ 최시영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글로벌파운드리가 이 공정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 삼성전자로서는 긴장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과거 글로벌파운드리는 20나노보다 미세한 공정의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데 번번이 실패해왔다.
2014년 4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당시 S.LSI사업부)로부터 14나노 공정 기술을 이전받았지만 공정 안정화에 애를 먹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2015년 안에 10나노와 7나노 공정의 기술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글로벌파운드리는 2016년 8월 10나노 공정의 개발을 중단하고 7나노 공정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8년 8월 7나노 공정 개발마저 포기했다.
2018년은 AMD가 4세대 CPU의 설계를 마치고 제품 생산을 맡길 파운드리회사를 저울질하던 시기였다. 글로벌 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의 연구개발을 포기하면서 AMD는 7나노 CPU를 TSMC에 발주하게 됐다.
이번 기업공개는 글로벌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 확보에 재도전해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파운드리 선두기업들과 기술뿐만 아니라 시장 점유율의 격차를 함께 좁히기 위해 던지는 승부수인 셈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AMD 가운데 인텔은 자체 파운드리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세계 파운드리회사들이 AMD의 발주물량을 주시하고 있는 시점에 글로벌파운드리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공개를 준비한다는 점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