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1-05-04 13: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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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텔이 35억 달러를 투자하는 미국 뉴멕시코 리오랜초 사업장. <인텔>
인텔이 파운드리사업(반도체 위탁생산) 기반을 다지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계속 하고 있다.
성적이 부진한 메모리반도체사업 대신 파운드리사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선도 파운드리기업이 인텔에 따라잡힐 우려는 적다고 반도체업계는 바라본다. 인텔은 파운드리사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력에서 삼성전자와 비교해 상당히 뒤처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인텔은 한국시각 4일 미국 뉴멕시코 리오랜초 사업장에 35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사업 등에서 만들어지는 반도체를 위한 패키징 라인을 신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파운드리사업 전략 ‘IDM2.0’을 내놓고 애리조나 신공장 건설 등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뒤 한 달여 만에 나온 추가 투자계획이다.
패키징은 반도체칩을 완제품에 알맞은 형태로 포장하는 공정으로 반도체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파운드리기업은 전문기업에 패키징을 맡기지만 사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패키징 라인을 운영하기도 한다.
리오랜초 사업장의 패키징 라인은 내년 말 양산 준비를 마칠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반 에스파르자니 인텔 수석부사장은 이번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IDM2.0 전략의 핵심 차별화 요소는 최고의 제품을 제공할 수 있는 발전된 패키징의 리더십에 있다”며 “인텔 파운드리서비스를 도입한 뒤 이런 기술에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초 리오랜초 사업장은 인텔의 자체 메모리반도체 ‘3D크로스포인트’ 연구개발을 담당해 왔다. 이에 따라 이번 투자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는 메모리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외신에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과 달리 인텔은 메모리반도체 대신 파운드리 중심의 패키징 투자를 선택했다. 인텔의 메모리반도체사업 비중이 지금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3D크로스포인트는 인텔과 마이크론의 협력으로 개발됐다. 데이터 처리속도가 빠른 D램과 저장공간이 많은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로 각광받았다. 인텔은 2017년부터 ‘옵테인’ 브랜드를 앞세워 3D크로스포인트 기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을 제품화했다.
그러나 3D크로스포인트는 현재 기존 메모리반도체보다 비싼 가격 등의 단점으로 기업이나 일반소비자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체 SSD시장에서 3D크로스포인트 기반 제품의 비중은 한 자릿수 초반대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사업규모도 축소되고 있다. 마이크론은 3월 3D크로스포인트사업에서 철수하고 생산공장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인텔은 1월 소비자용 옵테인 SSD를 단종했고 앞으로도 소비자용 대용량 신제품을 내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 2016~2020년 인텔 비휘발성메모리(NSG)사업부 영업이익(위쪽)과 매출. <인텔>
3D크로스포인트를 비롯한 메모리반도체사업의 수익성 역시 시스템반도체사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진하다.
지난해 인텔은 전체 영업이익 253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3D크로스포인트가 포함된 인텔 비휘발성메모리(NSG)사업부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손익분기점에 근접한 수준에 머물렀다.
인텔이 최근 SK하이닉스에 NSG사업부의 낸드플래시부문 매각을 결정한 데도 이런 수익문제가 반영됐던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이처럼 메모리반도체사업 대신 파운드리 분야에 집중하면서 향후 파운드리업계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파운드리시장 1인자는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 대만 TSMC다. 뒤이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20%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며 2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TSMC와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력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파운드리사업을 본격화한 인텔이 삼성전자와 TSMC의 경쟁기업으로 꼽히는 이유는 이미 세계적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등 막대한 양의 시스템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생산해 반도체업계에서 삼성전자와 매출 1, 2위를 다툰다.
위치적으로도 외국기업과 비교해 인텔에 파운드리사업의 이점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의 본진인 미국에는 국제적으로 손꼽히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가 많아 인텔이 반도체 일감을 확보할 기회가 충분하다. 퀄컴, AMD,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대형 팹리스는 대부분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
또 최근 미국이 자체 반도체 생산역량 확대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인텔이 파운드리사업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4월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우리의 혁신 전략(Moonshot)은 반도체 공급량의 3분의 1이 미국 기업에 의해 미국 땅에서 생산돼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다만 인텔 파운드리사업에도 약점이 존재한다. 그동안 발전이 더뎠던 첨단공정 문제다.
반도체는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전력효율 등 성능이 개선된다. 현재 가장 발달된 미세공정은 나노미터(nm) 단위의 회로를 구현한다. 이런 미세한 회로를 만드는 기술에서 인텔은 파운드리 선두기업과 비교해 상당히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성전자와 TSMC는 현재 5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고 내년부터 3나노급 공정 양산을 시작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V1라인. 3~7나노급 첨단 반도체가 생산된다. <삼성전자>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2세대 3나노급 공정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히며 기술 리더십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공고히 했다.
반면 인텔은 2023년 즈음에야 7나노급 공정 양산이 예정돼 있어 첨단 미세공정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기업들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밖에 없다.
인텔 파운드리사업이 당분간 삼성전자와 TSMC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허지수 대신증권 연구원은 “2024년 애리조나 신공장 완공 전까지 인텔 파운드리 생산시설은 22나노급 등 기존 공정이 대부분일 것이다”며 “ 인텔 파운드리사업은 향후 3년 동안은 공장 투자비용, 고객사와 조율·재설계 등으로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TSMC 등 아시아계 제조업 강자들이 반도체산업의 중심이 되고 있다”며 “돈만으로는 옛 인텔의 위상을 되돌려놓을 수 없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