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나명희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담당, 이방실 ESG 담당, 장지은 D램 개발 담당. < SK하이닉스 > |
SK하이닉스가 여성임원을 선임해 성 다양성의 첫걸음을 뗐다.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는 일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의 필수조건 가운데 하나다. ESG경영이 SK그룹 차원의 경영방침으로 자리잡는 만큼 SK하이닉스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힘쓸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최근 임원인사를 통해 이례적으로 여성임원을 뽑으며 능력 있는 여성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올해 신임 여성임원은 나명희 미래기술연구원 담당, 이방실 ESG담당, 장지은 D램 개발담당 등 3명이다. 담당은 SK하이닉스의 직급으로 부사장 이하 임원을 말한다.
나명희 담당은 반도체 미세공정 전문가다. 글로벌 기술기업 IBM과 벨기에 반도체연구소 IMEC 등에서 일했다.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에서 반도체 관련 선행기술을 연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방실 담당은 국내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지속가능경영과 관련한 전문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SK하이닉스는 ESG경영 정착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이방실 담당을 영입했다.
장지은 담당은 SK하이닉스 주력사업인 D램 분야에서 23년 동안 근무하며 반도체 설계를 맡아 왔다. 앞서 3세대 20나노급(2z) 4Gb DDR3 D램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임원 3명이 새로 선임된 것은 SK하이닉스가 내세우는 ESG경영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SG경영에는 인재영입에 관해 다양성을 중시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성별과 성적 지향성, 가치관 등 특정 범주에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인재 풀’을 확보해야 기업의 경영전략이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조상미 이화여대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장은 2020년 SK하이닉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다양성·포용성 보장 노력은 건강한 기업이 가져야 할 필수 요건이다”며 “이는 트렌드를 넘어 기업의 의무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여성의 참여 확대가 구체적 경영성과로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기업 내 여성임원 비율 확대를 위한 전략 연구’ 보고서에서 “IMF가 유럽 기업 200만 개를 대상으로 고위직의 성 다양성과 재무성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고위직의 여성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의 총자산 순이익률(ROAs)이 상승했다”며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집약적 분야일수록 창의성과 전략적 사고를 필요로 하는데 이런 분야에서는 특히 고위직의 성 다양성에 따른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같은 기술기업에서 여성인재 영입의 효과가 특히 뚜렷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물론 여성 등 다양한 인재영입은 알맞은 능력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2019년 5월 임직원과 대화에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역량의 크기가 다 다르고 그것을 대패로 깎아서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여성인재의 규모가 아직 작은 만큼 당분간 여성리더 육성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번 인사에서 선임된 여성 임원 3명 가운데 SK하이닉스 내부에서 승진한 사람은 장지은 담당 1명뿐이다.
여성 구성원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이 여전하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장지은 담당은 1월 SK하이닉스 내부 인터뷰를 통해 “제도적으로 또는 공간적으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가 부족하다”며 “SK하이닉스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적 보완을 통해 육아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기본적 복지제도 이외에 여성 리더를 성장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따라 올해 초 수립한 ‘사회적가치2030’ 로드맵을 기반으로 여성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술사무직에서 여성 채용비율을 높이는 한편 여성 직책자 수를 현재 2배 규모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나명희 이방실 장지은 담당에 관한 인사가 있기 전까지는 SK하이닉스에서 여성임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SK하이닉스는 2014년부터 사업보고서에 임원 성별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이인경 전 연구위원이 2015년 SK하이닉스의 유일한 여성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이후 2년여 만에 퇴임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2020년까지 SK하이닉스에는 여성 미등기임원이 전무했다.
SK하이닉스 이사회도 최근에야 여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2020년 주주총회에서 한애라 성균관대 교수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 반도체부문은 여러 해 전부터 여성임원을 꾸준히 채용해 왔다. 메모리사업부 출신 양향자 민주당 의원이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여성임원으로 잘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첫 여성전무가 나오기도 했다.
이사회의 여성 합류도 삼성전자가 더 빨랐다. 삼성전자는 사업보고서에 임원 성별을 표시하기 시작한 2013년 주총을 통해 김은미 당시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