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솔 기자 limhs@businesspost.co.kr2020-09-28 1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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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 SMIC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게 되면서 화웨이는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확보하기 위해 퀄컴 등 외부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퀄컴으로부터 차세대 AP를 수주하며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퀄컴이 화웨이와 거래를 허가받게 되면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
28일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웨이는 미국 제재로 대만 TSMC와 거래가 끊기면서 중국 SMIC를 그 대안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미국의 SMIC 제재로 중국 1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하이실리콘을 보유한 화웨이의 퇴로마저 이제 사라지게 됐다"고 바라봤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도 “SMIC에 관한 미국 제재로 화웨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어졌다”며 “중국 반도체 굴기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현재 스마트폰용 AP 확보가 급하다. AP는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를 말한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AP 등 반도체를 파운드리기업에서 위탁생산해 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15일부터 화웨이를 대상으로 한 반도체 제재를 강화하면서 다른 기업과 반도체 거래 자체가 불가능해질 위기에 놓였다. 미국 기술이나 장비가 적용된 반도체를 화웨이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중국 최대 파운드리기업 SMIC도 미국 반도체장비와 기술 확보에 제동이 걸려 화웨이 등 반도체기업들의 주문을 소화하기 어렵게 됐다.
결국 화웨이는 AP를 외부에서 수급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메이트50이나 P50 등 내년 출시할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하기 위한 고성능 AP는 미국 팹리스기업 퀄컴이나 대만 팹리스기업 미디어텍 등 외국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화웨이는 퀄컴을 통해 고성능 AP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미디어텍은 화웨이용 5나노급 AP 개발을 추진했지만 미국이 화웨이 제재의 고삐를 풀지 않자 포기했다.
퀄컴도 미국 정부에 반도체 공급 허가를 요청하는 등 화웨이에 AP 공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화웨이가 세계 1~2위 수준의 스마트폰 출하량을 자랑하는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퀄컴이 화웨이와 거래를 트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영국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퀄컴과 같은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과 AMD에 이미 화웨이로 제품을 공급하도록 허가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도 23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협력사 행사에 참석해 “퀄컴이 허가를 받게 되면 우리는 퀄컴 반도체를 공급받아 스마트폰 생산에 사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세계 스마트폰용 AP 지형이 달라지면서 퀄컴과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도 화웨이와 퀄컴의 거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당초 세계 1위 파운드리기업 TSMC와 퀄컴의 AP를 나눠 생산해 왔다. 퀄컴이 지난해 말 공개한 7나노급 AP 스냅드래곤865와 스냅드래곤765는 각각 TSMC와 삼성전자가 만든다.
하지만 최근에는 TSMC의 생산능력이 부족해지면서 삼성전자가 퀄컴의 차세대 제품 5나노급 AP 스냅드래곤875를 전량 수주하는 성과를 냈다. 보급형 AP 스냅드래곤4 시리즈의 최신 제품도 삼성전자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퀄컴 AP 가운데 가장 성능이 높은 스냅드래곤8 시리즈는 최상위 스마트폰에 사용된다. 스냅드래곤875는 화웨이가 개발하던 5나노급 AP ‘기린1020’을 대체하기에 충분한 사양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IT매체 폰아레나는 화웨이가 내년 프리미엄 스마트폰 P50 등에 스냅드래곤875를 탑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하이실리콘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던 화웨이의 AP 수요 가운데 상당 부분을 퀄컴이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9년 세계 스마트폰용 AP시장은 196억 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퀄컴은 36%, 하이실리콘은 14%를 차지했다.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전경.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고성능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에 힘쓰고 있어 늘어나는 퀄컴의 AP 일감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2월부터 화성사업장 V1라인을 가동해 7나노급 이하 반도체 생산규모를 2019년보다 3배 이상 늘릴 수 있게 됐다.
평택사업장에서도 5나노급 이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파운드리공장이 2021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화웨이, SMIC 등 중국 반도체기업을 제재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최영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SMIC까지 제재를 받으면서 파운드리 시장의 공급자 또한 축소되고 있다”며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최근 엔비디아와 IBM, 퀄컴 수주가 이어져 하반기 가동률 및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MIC에 관해 미국 측의 제재조치 가능성이 대두된 뒤 파운드리 생산라인은 2차대전 당시 전략물자로 꼽히던 텅스텐이나 몰리브덴 광산만큼 중요해졌다”며 “삼성전자의 주가가 이런 위상 변화를 반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