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고 단기차입금을 조달해 4500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며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모두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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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그러나 해운업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도 강한 상황이어서 이번 유동성 확보는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대상선 주가는 12일 전일보다 0.40%(20원) 오른 504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주가도 전일보다 3.01%(1500원) 오른 5만13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에 숨통이 트였다는 기대를 받아 현대그룹 주력인 두 회사의 주가가 약세장 속에서 선방했다.
현대상선은 보유하고 있던 현대엘엔알 지분 44만1천 주 전량과 현대아산 지분 가운데 일부인 808만7751주를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해 각각 254억 원, 358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고 11일 밝혔다.
현대상선은 또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로부터 1392억 원을,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스마트업 제1차 유한회사 등으로부터 2500억 원을 빌렸다.현대상선은 확보한 자금으로 2천억 원 가량을 산업은행에 갚았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지분 22.43%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9.54%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현대상선은 이 대출금을 상환한 것이다.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금을 갚았다는 것은 현대증권 매각을 놓고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대증권 매각은 산업은행 주도로 추진됐으나 끝내 불발됐다.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주식을 담보로 단기 차입금을 마련한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산업은행 대출금을 받아 일단은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압박을 무디게 하면서 현대그룹의 향후 자구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시간을 벌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현정은 회장이 일단은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을 모두 포기하지 않고 현대그룹의 구조조정의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뜻을 굳힌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은 자구안의 일환으로 이미 포함됐던 것이며 재매각은 산업은행과 협의를 해서 진행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최근 영구채를 발행하는 방안을 놓고 산업은행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에서 벌크전용선부문을 분리한 자회사 현대벌크라인이 영구전환사채(하이브리드 CB)를 발행하는 방안이다. 현대그룹은 영구채 발행규모로 3천억 원 이상을 기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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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 |
현 회장의 이런 ‘해법’이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당장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채권단 내부에서 해운업황이 쉽게 좋아지기 어려운 만큼 현대상선을 매각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이번에 단기차입으로 현금을 조달하면서 단기차입금 규모가 6527억여 원으로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상선은 내년까지 이자비용과 공모사채 만기상환, 선박 관련 채무 등을 고려하면 1조 원 가까이 유동성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에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자구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해 놓았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자구계획은 시한이 정해진 것은 아니며 산업은행과 지속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