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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
“실리콘밸리 IT회사들이 점점 자동차회사가 돼 가려는 것은 전혀 위협이 안 된다.”
이언 칼럼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가 최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한 말이다.
그는 차는 감성적 제품이어서 IT회사가 비감성, 다시 말해 이성적 방식으로 차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했다.
칼럼의 이런 발언은 IT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데 대한 완성차업계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힌다.
IT기업의 최대 강점은 혁신이다. 자동차시장이 혁신의 격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칼럼은 IT기업들이 이성적 방식으로 자동차산업에 접근한다고 비판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감성적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한 IT기업들이 혁신을 이뤄내기란 불가능하다.
자동차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들 수 있다.
테슬라는 지난 8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 기업(The World’s Most Innovation Companies)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테슬라는 ‘자동차업계의 애플’로 불리기도 한다. 머스크는 테슬라를 통해 전기차시장을 주도하며 IT기업과 완성차업체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머스크의 외줄타기는 갈수록 위험해 보인다. 테슬라의 주력인 전기차시장에 IT기업들이 뛰어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벤츠나 아우디 등 자동차시장의 최강자들도 공략을 서두르고 있다.
머스크에게 이런 협공은 위기일까? 기회일까?
◆ 머스크, ‘테슬라’ 전기차 라인업을 다양화하는 이유
테슬라는 29일 첫 스포츠유틸리티 차량 '모델X'를 출시한다. 머스크는 지난 2일 트위터에서 “첫 번째 생산된 모델X가 29일 인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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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가 2012년 공개한 SUV 전기차 '모델X'. |
모델X는 테슬라가 내놓은 세번째 차량이자 크로스오버 SUV로 첫 모델이다.
머스크는 모델X가 모델S보다 차량 크기가 크고 차체도 복잡하다며 같은 옵션이면 모델X의 가격이 모델S보다 5천 달러 정도 비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정판인 모델X 시그너처는 90킬로와트시(kWh) 배터리,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1회 충전에 240마일(386km) 주행, 정지상태에서 시속 60마일(97km)까지 3.8초 만에 가속, 최고속도 시속 155마일(249km) 등의 사양을 갖추고 있다. 예상가격은 13만2천 달러(약 1억5600만 원)다.
머스크는 저가의 소형세단 '모델3'도 내년 3월 공개한다고 밝혔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려 한다. 그동안 품질향상에 주력했다면 가격을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사업은 순항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테슬라의 ‘모델S' 판매는 급증했다. 모델S는 테슬라가 출시한 중형 전기차 세단이다.
이 차는 2분기 동안 1만1507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판매량이 52% 늘어났다. 1분기 판매대수 1만대를 넘어서 상승세가 2분기에도 이어진 것이다.
머스크는 SUV '모델X'를 내놓고 테슬라의 전기차 라인업이 다양해지면 올해 5만5천 대 이상을 판매한다는 계획도 무난하게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머스크는 지난 7월 콘퍼런스 콜에서 “4분기 모델X 생산시설을 확대할 예정인데 4분기 생산량이 두 배로 늘어 올해 5만5천대 판매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판매량만 놓고 보면 테슬라의 전기차사업 성적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테슬라의 경영실적은 부진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벤처비트는 지난달 9일 테슬라가 차량 한 대를 팔 때마다 4천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테슬라 전기차 판매량은 늘었지만 수익을 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전기차시장의 현실이다.
◆ 테슬라, IT기업과 완성차 업체들 협공에 시달려
테슬라는 실적부진 외에도 IT기업들의 인력 빼가기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의 전기 자율주행차 프로젝트인 ‘타이탄’에 테슬라 수석 엔지니어인 제이미 칼슨이 합류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CNBC는 지난 18일 “애플이 테슬라로부터 인력을 꾸준히 스카우트해 오고 있다”면서 “애플 대 테슬라의 대결구도라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보도했다. 전기차 후발주자들의 공세도 테슬라에게 위협적 요소다. 특히 중국의 전기차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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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중형 전기차 세단 '모델S'. |
중국의 전기차 스타트업인 넥스트EV는 최근 5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넥스트EV는 지난해 상해에서 첫 출범한 전기차회사다.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와 중국 대형투자사 힐하우스캐피털이 투자했다.
넥스트EV는 2016년 테슬라의 루디크로스 스피드 모드를 겨냥해 슈퍼카를 선보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루디크로스 모드는 시속 약 100km를 2.8초대에 도달할 수 있다.
넥스트EV가 내놓을 차량가격은 6만2천 위안(약 1130만 원)으로 정해져 테슬라 전기차의 가격경쟁력을 압도한다. 테슬라는 모델S 가격은 가장 싼 것이 7만6천 달러다.
물론 넥스트EV가 생산하는 전기차는 테슬라의 품질을 아직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친환경차에 대한 중국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업고 막대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기술혁신을 이뤄내면 전기차시장 선두가 바뀌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윌리엄 리 넥스트EV 창업자는 지난 17일 “지금은 중국시장에 주력하지만 추후 사업을 해외로 확장할 예정”이라며 “중국 소비자는 매우 까다로워 중국에서 성공한다면 해외진출도 한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대표적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대표적 인터넷 검색엔진회사인 바이두도 전기차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 3월 상하이자동차와 손잡고 10억 위안(1840억 원)을 인터넷과 연동한 전기차 개발에 투자해 2016년까지 신차를 내놓기로 했다.
◆ 판 커진 전기차시장, 테슬라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글로벌 자동차업체들도 테슬라의 전기차 아성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포르셰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전기차 ‘미션E’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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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
이 차량은 최대출력 600마력, 제로백(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 3.5초, 1회 충전 주행거리 500km의 성능을 자랑한다. 포르셰의 스포츠카 브랜드 ‘911’의 전기차버전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차가 테슬라 모델S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관측한다.
테슬라의 모델S는 1회 충전 주행거리 270마일(약 435km)이며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데 5초가 걸린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기차시장의 판이 커지면 테슬라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테슬라 주가는 최근 부진하지만 2년 전에 비하면 70% 가량 올랐다. 테슬라 시가총액은 8월 초 기준 310억 달러 수준으로 피아트 크라이슬러를 넘어섰다. 전기차시장에서 테슬라의 잠재적 경쟁력이 기대받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규모는 올해 260만대에서 2020년 770만대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업체의 각축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IHS는 중국 친환경 자동차시장 규모가 올해 11만대 수준으로 커지고, 2020년 65만5천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