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두산중공업에 아시아나항공 수준에 버금가는 자구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채권단 가운데 시중은행들은 건전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데다 자칫 특혜시비에 걸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자구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회계법인의 실사를 받고 있다.
채권단은 두산중공업 쪽에 “지난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했던 수준의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내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채권단 회의에서 두산중공업 유동성 지원에 시중은행도 동참해줄 것을 제안했는데 시중은행들은 추가 자금지원이 어렵다는 의견을 산업은행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중공업 채권단은 산업은행(7800억 원), 수출입은행(1조4천억 원), 우리은행(2270억 원), NH농협은행(1200억 원), SC제일은행(1700억 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재 두산중공업은 자구계획을 놓고 말을 아끼고 있다.
시장에서는 두산건설 매각, 두산중공업 일부 사업부 분할 매각,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및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등 오너일가의 사재 출연 등이 자구계획에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두산건설은 현재 건설경기 등을 고려할 때 매각이 성사될지 미지수다. ‘보여주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두산중공업의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나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의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6년 이후 중국 굴삭기시장 호황 등에 힘입어 두산그룹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내는 계열사로 탈바꿈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2년 연속 영업이익 8천억 원대를 냈다.
채권단이 두산-두산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두산밥캣으로 이어지는 두산그룹의 수직 계열구조를 끊어내는 방안을 요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두산중공업을 사업회사와 두산인프라코어 및 두산밥캣 지분을 지닌 투자회사로 분리한 다음 투자회사를 두산과 합병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 아래에는 100% 자회사인 두산건설만 남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두산중공업 처지에서 지원을 받을 자회사가 없어진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방법은 두산중공업 입장에선 그나마 지원을 해주던 자회사까지 없어지는 것이라 상징성이 강한 두산중공업을 그룹이 포기하겠다는 의미”라며 “주주가 과연 동의할지가 미지수”라고 말했다.
채권단이 두산그룹 오너일가의 사재출연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재를 털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주주는 사재출연 압박을 받는 일이 적지 않았다. 과거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지분 전량을 매각해 3300억 원을 마련한 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대부분의 사재를 계열사 주식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데다 이미 대부분이 담보로 잡혀 있어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은 별로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 32명은 이번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이미 계열사 주식 등을 담보로 맡겼다.
현재 두산중공업이 겪고 있는 상황은 여러 면에서 1년 전 아시아나항공이 겪은 상황과 겹쳐보인다.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을 압박해 박삼구 전 회장의 퇴진은 물론 아시아나항공 매각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당시 채권단은 자구계획을 받은 지 하루 만에 공개적으로 퇴짜를 놨다. 당시 산업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채권단은 자구계획에 사재출연 또는 유상증자 등 실질적 방안이 없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보다는 유연한 잣대를 댈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위기가 박 전 회장의 경영상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두산중공업의 위기에 정부의 탈원적 정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