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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2년만에 인수합병을 다시 추진한다. 두산그룹이 오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 재무건전성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이 동박적층판 생산회사인 ‘서킷포일(Circuit Foil)’ 인수절차를 진행중이다. 인수 예상가격은 700억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2년 만에 인수합병에 뛰어들었다. 그는 2012년 영국 수처리 전문업체 ‘엔퓨어’를 사들였다. 이후 박 회장은 치솟는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인수합병을 자제해왔다.
이번에 두산그룹이 인수를 추진하는 서킷포일은 룩셈부르크 회사로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의 자회사다. 아르셀로미탈은 세계 전체 철강의 6~7%를 생산한다. 아르셀로미탈은 최근 유럽의 철강수요가 감소해 수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에 있는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서킷포일 매각도 아르셀로미탈이 사업구조조정 측면에서 정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서킷포일의 동박적층판 기술을 탐내고 있다. 이는 전자제품에 주로 쓰이는 인쇄회로기판의 주재료다. 두산은 동박적층판을 생산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이 분야의 지난해 매출이 7400억 원이 넘는다. 두산 전체매출의 30%를 차지했다.
서킷포일은 두산그룹이 유럽에 진출하는 데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두산으로서 매력을 느낄만하다. 두산 관계자는 “서킷포일은 동박적층판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두산의 유럽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미 지난해 여름 서킷포일에 대한 현지 실사를 마치고 매입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설이 나돌아 인수시기가 계속 늦춰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 리스크’가 남아있는 데다 두산건설의 실적부진과 부채비율에 대한 우려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미국 소형중장비회사 밥캣 인수 탓에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는 말을 들었다. 밥캣 인수를 진행한 지 6년이 지났지만 북미 주택경기 불황으로 밥캣 실적은 계속 악화됐다. 그 결과 두산그룹은 지난해 부채비율이 300%까지 치솟았고 밥캣 인수에 따른 이자비용만 매년 800억 원씩 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밥캣이 실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967억 원으로 전년 4분기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북미지역에 주택경기가 풀리면서 매출액이 크게 뛰었다. 또 적자를 면치 못한 유럽사업부문을 구조조정해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렸다.
두산그룹은 또 주력기업의 부채비율을 많이 낮췄다. 두산건설은 136.2%로, 두산중공업은 140.5%, 두산인프라코어는 168.2%로 각각 부채비율이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두산그룹 경영진이 부채부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해 다시 인수합병에 나섰다고 분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밥캣 인수자금 중 아직 다 갚지 못한 17억 달러를 최근 미국에서 밥캣의 자체신용을 통해 장기차환하기로 했다”며 “신규 인수합병에 나서기로 한 것은 재무적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1일 밥캣 인수금액의 장기차환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