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규제와 관련한 태도 변화가 있다. 파생결합상품과 라임자산운용 사태 등 악재가 반복되고 있어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더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사모펀드와 관련한 규제 가능성을 내놓았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금융위원장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의 모험자본 공급과 경제 활성화 등 순기능을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시각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판매한 파생결합펀드(DLF)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중단사태도 벌어지며 은 위원장의 태도가 바뀌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결국 소비자 보호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만 도입한다는 결론을 내리며 사모펀드의 투자 활성화와 경기부양 등 역할에 기대를 걸었다.
금융위원회는 14일 발표한 ‘사모펀드 현황 평가 및 제도 개선방향’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 등 사모펀드 본연의 순기능을 훼손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같은 사모펀드 부실 문제가 일부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사모펀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은 위원장이 사모펀드의 자금 운용방식이나 투자처를 제약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도입하고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그동안 금융권에서 힘을 얻었다.
금융당국이 파생상품 손실사태와 관련한 조사를 마친 뒤에는 은행에서 고위험상품 판매를 아예 금지하고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처벌기준도 강화하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1월부터 이례적으로 국내 모든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자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사모펀드 전반의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유력해졌다.
그러나 은 위원장은 사모펀드가 자산운용과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를 집행할 수 있다며 사모펀드의 순기능에 여전한 신뢰를 보였다.
다만 사모펀드 운용사가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투자구조를 단순화하며 펀드상품 판매사도 운용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는 도입됐다.
금융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모펀드 규제는 예상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으로 사업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 위원장이 고강도 대책을 내놓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라임자산운용의 환매중단사태에 따른 여파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라임자산운용은 14일 환매가 중단된 두 사모펀드의 회계법인 실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손실률이 각각 46%와 17% 수준으로 나타났다.
일부 자펀드에 투자한 소비자에는 큰 손실이 예상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손실률이 시장 예상치보다 낮은 수준이고 추가 자금회수가 이뤄지면 손실이 더 축소될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세계 무역상황 악화와 경제 부진에 이어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까지 겹쳐 한국경제 전반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점이 두 번째 이유로 꼽힌다.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투자가 대폭 위축된 상황에서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한 규제까지 강화된다면 경제 부진의 골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은 위원장이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강도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라임자산운용이 아직 환매중단 사모펀드의 자펀드 실사결과는 발표하지 않았고 다른 자산운용사에서도 유사한 환매중단사태가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는 점은 부담이다.
만약 소비자 피해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은 위원장의 소극적 대응도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은 위원장은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사모펀드 운용의 자율성을 가능한 보장하는 선에서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기능과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는 조치에 더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는 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의 의견을 받은 뒤 3월 초에 사모펀드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에 시장의 불신이 커진 만큼 유관기관과 금융회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투자자 보호규정도 보완할 것”이라며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전체 사모펀드시장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모니터링과 대응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