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사업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메모리반도체 고객사들이 수급처 다변화를 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마이크론과 중화권 반도체기업이 한국과 일본의 갈등에 ‘어부지리’를 얻어 반도체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넓히며 수혜를 볼 수 있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17일 CNBC 등 외국언론에 따르면 한국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한 일본의 수출규제에 미국 마이크론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힘을 얻고 있다.
증권사 UBS는 “한국의 반도체 소재 확보 문제가 메모리반도체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며 “마이크론이 이번 사태로 볼 수혜가 아직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일본 정부가 1일 불화수소 등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일부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기 어렵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한 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에 실제로 차질을 일으킬 가능성에 대비해 고객사들이 적극적으로 메모리반도체 물량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일본에서 완전한 수출 금지조치가 결정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개월 안에 반도체공장 가동을 크게 줄여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이나 중국, 대만 등 다른 국가에서 불화수소 수급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품질이 검증되지 않았고 일부 물량을 확보하더라도 반도체 생산수율이 낮아져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에 따른 수혜는 마이크론이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론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에 대응해 웨이퍼(반도체 원판) 투입을 계획보다 10% 줄이기로 하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생산을 감축하던 기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 차질 가능성이 현실화한다면 감산계획을 취소하고 올해 반도체 시설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증설투자를 벌이기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마이크론이 시장 점유율을 높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고객사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주로 사들이던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를 마이크론 등 다른 기업으로 다변화해 반도체 확보 차질의 위험을 줄이려 할 가능성도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고객사를 해외기업에 빼앗길 수 있는 셈이다.
마이크론은 그동안 계속된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과 수요 감소로 대량의 재고를 쌓아두고 있는 만큼 단기간에 고객사 수요가 급증해도 충분히 대응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중화권 반도체기업도 반도체시장 진출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는데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더욱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만 난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은 D램 4위기업으로 시장 점유율이 2~3%에 그치지만 메모리반도체 고객사들의 확보망 다변화 노력에 수혜를 볼 가능성은 충분하다.
▲ 미국 마이크론의 D램 메모리반도체.
중국 YMTC도 올해 하반기부터 낸드플래시 양산을 앞두고 고객사 확보에 고전하고 있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요를 일부 대체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검토중인 만큼 사태가 장기화돼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이런 위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시장에서 70%, 낸드플래시에서 50% 가까운 합산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생산 차질은 IT업계 전반에 막대한 여파를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본이 실제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강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고객사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에만 의존하는데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마이크론이 한국 반도체기업의 타격으로 생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며 “메모리반도체 고객사가 단기간에 확보처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 점유율을 빼앗길 잠재적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