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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계획이 암초에 부딪혔다.
삼성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합병에 대한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변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위한 합병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주류를 이뤘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런 약점을 잡고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증권 전문가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그동안 헤지펀드들이 그렇게 했듯이 삼성물산 주가를 올려 차익을 얻고 빠질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번 삼성물산 분쟁으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사업과 무관하게 이재용 부회장을 위해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도덕적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총수가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한국 재벌의 취약성을 확인해 주고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합병 등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삼성식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이재용 위한 삼성그룹 합병, 주주반발에 직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4일 경영권 참여를 위해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삼성물산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그동안 삼성물산 지분 4.95%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지난 3일 이 회사의 지분 2.17%를 추가로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해 삼성SDI, 국민연금에 이어 삼성물산의 3대 주주로 떠올랐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도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비율을 1대 0.35로 설정했다. 이는 두 회사의 주식가치를 바탕으로 산출한 수치다.
그러나 이런 합병비율을 두고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가치를 저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이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게 설정한 반면 오너 일가의 지분이 미미한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춰 합병을 오너일가에 유리하게 진행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만 해도 12조 원이 넘으며 여기에 부동산 등을 더하면 삼성물산의 자산가치가 29조5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삼성물산의 합병발표 전 시가총액 8조6천억 원은 이 회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 정도 밖에 안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블룸버그도 “삼성그룹 오너일가가 상당히 적은 비용으로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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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왼쪽)과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CEO |
◆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의도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자체를 무산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보다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주식가치를 올리거나 삼성그룹에 지분을 좋은 조건으로 되팔아 이익을 올리려는 목적이 더 크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합병 발표 뒤 삼성물산의 주가가 6만 원을 돌파하며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5만7234원보다 더 올랐다”며 “합병이 무산될 경우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 단순히 차익을 얻기보다 향후 발언권을 확대해 더 적극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국제적으로 행동주의 투자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자산운용 규모가 30조 원에 이른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다른 외국인주주 등 소액주주들과 연대해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삼성물산에 대한 외국인지분율은 31%를 넘지만 삼성그룹의 우호지분은 20%도 안 된다.
또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9.7%를 보유한 국민연금 설득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을 아군으로 끌어들일 경우 이 둘의 힘만으로도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합병결의에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액이 1조5천억 원을 넘으면 합병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 약 17%에 해당한다. 국민연금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지분을 합치면 17%에 육박한다.
증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높으면 굳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주주총회까지 한 달이 넘게 남아 입장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며 “현재 삼성물산 건과 관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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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호암상 축하 만찬에 이서현(왼쪽부터) 제일모직 사장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
◆ 삼성그룹, 이재용 상처 입을까 노심초사
삼성그룹은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이의제기가 자칫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명분대결로 번질까 우려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부회장은 그룹의 주력인 삼성전자 지분 0.5%을 보유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4.1%에 대한 간접적 지배력을 늘릴 수 있다.
따라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 부회장이 승계를 위한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문제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계속할수록 이재용 부회장이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이 부회장이 불명예를 안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삼성그룹에서 애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너지를 강조했던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삼성물산은 이날도 공식입장을 통해 “두 회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시장이 현재 평가한 기준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이번 합병추진 배경은 회사의 미래가치를 제고하여 궁극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는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삼성물산은 또 “다양한 주주들과 소통하면서 기업가치 제고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주요주주로 올라선 만큼 적극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조기해결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삼성이 하면 다 된다’에 대한 경고
증권 전문가들은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약점을 노리고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비집고 들어올 빌미를 삼성그룹이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이 하면 다 된다’ ‘삼성의 논리가 시장에 통한다’는 태도가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미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무산된 전례가 있다. 당시도 ‘삼성이 하면 다 된다’는 태도에 대한 경고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추진하면서 이 경고를 꼽씹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거침없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주주들에 대한 설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물론 소액주주들로부터 제지를 당하지도 않았다.
로이터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이번 삼성물산 합병 이의제기는 늘어나는 소액주주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있다”며 “한국의 대기업들이 오너 일가의 이익을 주주 권익보다 앞세우는 행위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