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웃돈까지 얹어 현대그룹에 현대로지스틱스 인수를 제안했다. 신 회장은 현대그룹이 강력한 자구책을 시행하는 것을 감안해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해 택배 부문을 강화하고 넓은 땅까지 손에 넣겠다는 생각인 듯 하다. 하지만 롯데그룹이 잇단 인수합병으로 부채가 늘어나고 자금조달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인수합병 시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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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뉴시스> |
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최근 미국계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 지분 매각을 추진중이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택배시장 시장점유율 2위 회사로 매년 2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다. 2011년 244억 원의 이익을 낸데 이어 지난해도 321억 원의 이익을 냈다.
현대그룹이 처음부터 현대로지스틱스를 팔고 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그룹의 돈줄 역할을 하고 있을뿐 아니라 그룹 지배구조의 상단에 위치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애초 현대로지스틱스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자금 수혈이 급박할 정도로 재무사정이 악화되고 신용등급 강등으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없게 되자 매각 쪽으로 급선회했다. 현대그룹은 기업공개를 통해 3천억 원 정도의 현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현대그룹은 특히 롯데그룹이 웃돈까지 얹어가며 인수의사를 밝히자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인수 가격을 현대그룹에 제시하면서 단독 협상 자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협상에서 롯데그룹이 제시한 가격과 현대그룹이 요구하는 가격 차이가 500억 원 이상으로 벌어지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를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매각하기로 했다. 롯데그룹을 비롯해 GS그룹과 중국계 사모투자전문회사 운용사 베어링PEA 등이 인수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다시 도전장을 낸 롯데그룹이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다.
롯데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의 택배 부문과 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롯데그룹엔 물류 계열사인 롯데로지스틱스가 있다. 그러나 롯데로지스틱스는 택배 부문에서 그룹 내 유통계열사 수요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역량이 취약하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9월부터 수도권 52개 매장에서 고객이 구매한 물품을 집으로 배송해주는 업무를 현대로지스틱스에 맡겼다. 롯데마트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만 연간 100억 원 이상일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인수를 통해 물류 부문을 강화하고 나아가 유통 부문과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한 후 롯데백화점이나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닷컴 등 그룹 유통 계열사의 자체물량만 소화해도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대로지스틱스가 가지고 있는 땅도 롯데그룹에게 매력적이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경기도 오산에 있는 오산복합물류센터와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동남권물류단지, 경기도 군포시에 있는 군포2기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특히 눈독을 들이는 건 오산복합물류센터다. 오산복합물류센터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로 수도권과 가깝고 평택항과 40분 거리에 위치해 향후 중국과 연계한 사업도 기대된다. 현대로지스틱스는 2019년까지 오산복합물류센터 운영권을 보유하며 계약 만료 시점에 우선 매수권을 부여받는다. 또 장지동 동남권물류단지는 서울에서 유일한 대형 물류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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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뉴시스> |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전에 롯데그룹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자 흥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알짜기업을 내놓는 마당에 높은 가격에 매각한 뒤 자금난으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생각이다.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는 현정은 회장 일가-현대글로벌-현대로지스틱스-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으로 이어지는 수직지배구조다. 현대로지스틱스가 매각될 경우 현대로지스틱스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21.25%)을 되사오는데 필요한 돈은 1858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대로지스틱스는 국내 물류업계에 남아있는 유일한 대형 매물이기 때문에 인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뿐 아니라 중견 물류회사를 보유한 기업들에게도 현대로지스틱스는 매력적 매물”이라며 “누가 인수하게 되느냐에 따라 물동량 이동이 불가피해 물류시장의 희비가 크게 갈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