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D램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에 대응해 올해 시설 투자를 예상보다 크게 축소하며 공급 조절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하반기 D램 수요가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반도체기업들 사이 점유율 경쟁도 벌어지고 있어 한동안 투자전략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왼쪽)과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 |
3일 시장 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 홈페이지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2019년 세계 D램업체들의 시설 투자는 2018년보다 10% 줄어든 180억 달러(약 20조3천억 원)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세계 D램 시설 투자가 연간으로 감소하는 것은 2012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다.
삼성전자는 약 80억 달러, SK하이닉스는 55억 달러를 사용할 것으로 추산됐는데 대부분이 신규 생산 투자보다 기존 생산라인의 공정 전환에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
D램익스체인지는 "D램 공급 과잉이 본격화되자 반도체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고 생산을 줄여 가격 하락을 방어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반도체기업들이 시장 조사기관의 예측대로 D램 출하량 증가를 자제한다면 반도체업황은 올해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경쟁사의 D램 출하량 증가가 주춤한 틈을 노려 투자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점유율 증가를 추진하는 반도체기업이 등장한다면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이전부터 메모리반도체업황이 둔화할 때 수요 반등을 기대하고 공격적으로 선제 투자를 벌여 후발업체와 점유율 격차를 벌리는 전략을 써 왔다.
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의 공정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 원가 절감 능력이 뛰어난 만큼 반도체업황이 악화한 상황에도 가장 타격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D램 공급 과잉으로 가격 하락 압박도 커지고 있지만 서버업체들의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면 하반기부터 업황이 빠르게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가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선제 대응을 위해 시설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낸드플래시에서 업황 악화에 대응해 투자를 줄이기보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려 꾸준한 증설 투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경쟁사들이 일제히 투자를 줄이면 D램에서도 점유율 확대를 우선 목표로 앞세울 가능성이 있다.
SK하이닉스가 올해 시설 투자계획을 분기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집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점도 경쟁사의 투자계획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해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D램 시장점유율이 3위에 그치고 있는 만큼 상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설 투자 속도가 주춤한다면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할 이유가 충분하다.
▲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왼쪽)과 SK하이닉스 이천 M14공장. |
결국 반도체기업들이 올해 시설 투자전략을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모두 사업 확대의 의지를 꺾고 업황이 안정화되는 데 집중한다면 공급 과잉이 해소돼 반도체업황 전반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런 상황을 노려 투자를 늘리는 기업은 경쟁사의 투자 축소에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2~3개 업체가 동시에 이득을 노리고 D램 시설 투자를 일제히 늘린다면 공급 과잉이 악화돼 업황 침체가 장기화되며 업계 전반으로 충격이 번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D램익스체인지는 "2019년 하반기에 반도체업황 회복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요가 크게 반등할 계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반도체 평균가격이 계속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