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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
어떤 일에 대해 확신을 주고자 할 때 흔히 “내 이름 석자를 건다”고 말한다. 틀리거나 잘못되면 책임을 지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경희 대표도 그렇다. 그는 회사 이름에 자기 이름 석자를 내걸었다. 한경희생활과학이다. 한 대표가 회사이름에 한경희 석자를 붙이자 사업초기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 대표는 처음에 잘 안 팔리던 ‘스팀청소기’에도 한경희 이름을 새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 제품도 대박이 났다. 주부들은 한경희생활과학의 제품을 두고 “주부 한경희가 이름까지 내걸었으면 중소기업이지만 제품은 믿을 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한경희라는 이름은 남자 소비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갔다. 경희라는 이름은 1963년생 여자에게 붙인 이름 가운데 세 번째로 많다는 조사가 나올 정도로 흔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경희’는 중소 생활가전 성공신화를 이룬 브랜드가 됐다. 하지만 이 이름 탓에 예상하지 못한 한계에도 직면하게 됐다.
◆ 브랜드가 된 ‘한경희’라는 이름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해 7월 청소업체 ‘한경희청소’를 상대로 낸 상표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한경희생활과학과 관계가 없는 업종에서 해당 표지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한경희생활과학과 무관한 한경희청소라는 회사 이름은 소비자들로부터 두 회사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대표는 “그동안 이 업체가 온라인에서 한경희생활과학과 동등하게 검색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줬다”며 “한경희생활과학은 내 이름을 걸고 키워 온 회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한경희라는 브랜드의 위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이 사업초기 한때 한영전기와 한영베스트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지금의 회사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경희라는 브랜드는 중국에서도 고급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한 대표는 2013년 중국에서도 디자인과 색상을 그대로 베낀 짝퉁제품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중국업체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수출제품 제조를 맡긴 게 문제가 됐다.
한 대표는 그뒤 “해외에 진출할 때도 단순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회사로 나가지 않겠다”며 “한경희생활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된 제품을 수출해야 진정한 해외진출”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1999년 한경희생활과학을 세운 뒤 3년 동안 스팀청소기를 개발했다. 그 결과 2001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팀청소기 발명특허 등록을 받았다. 그뒤 2003년 ‘한경희 스팀청소기‘를 내놓고 1천만 대 이상을 판매했다.
한 대표는 한경희생활과학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키우려 애를 쓰고 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2013년 매출 656억 원을 올렸고 지난해도 비슷한 수준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대표는 2020년까지 세계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가정생활용품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를 위해 한경희생활과학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에 한경희라는 이름을 걸고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한 대표는 평소 “평생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름까지 내건 만큼 품질 하나는 자신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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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2013년 5월 로드숍 2호점에 방문해 고객들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
◆ 회사이름도, 상품이름도 모두 ‘한경희’
‘한경희 스팀청소기’는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국내 스팀가전시장 점유율만 70~80%를 차지할 정도다.
한 대표는 주부시절 평소에 걸레질이 너무 불편했다. ‘고온 스팀으로 걸레질을 대신하는 청소기’ 개발을 결심한 지 2년만인 2001년 스팀청소기 ‘스티미’를 시장에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제품이 투박하게 무거웠고 결정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회사 브랜드가 약점으로 꼽혔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소비자들은 스팀청소기라는 세계 유일의 발명품이 기발하고 혁신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전자제품 특성상 매우 중요한 사후관리 서비스(AS)나 성능에 대해 신뢰가 부족해 구매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스티미를 어떻게 바꿀 지 고심했다. 제품 기능을 이리저리 바꾸고 디자인과 실용성을 높였다. 또 통상 실패한 제품을 다시 선보일 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한 대표는 2003년 스티미를 ‘한경희 스팀청소기’로 바꿨다. 제품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더해 홍보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 제품은 출시한 지 1년 만에 매출 150억 원을 돌파하는 등 주부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뒤 한 대표는 ‘한경희 스팀다리미’ ‘한경희 탄산수 스파클러’ ‘한경희 온수매트’ 등 신제품은 물론이고 ‘한경희 뷰티’ ‘한경희 홈케어 서비스’ 등 새로운 서비스에도 모두 한경희라는 이름을 붙여 브랜드를 확장했다.
◆ ‘한경희’ 브랜드파워가 지니는 한계
한경희생활과학은 16년 동안 일관된 브랜드네이밍 전략을 통해 ‘기발함’과 ‘품질’을 보여주는 기업이라는 또렷한 브랜드 색깔을 입혔다.
한 대표는 이런 브랜드 이미지를 살려 사업을 확대했다.
한 대표는 돈이 없어 제품화하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전국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모아 제품화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디어 제품을 생산하는 강소기업을 선정해 로드숍 50곳에서 소비자들과 만나게 해준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중학생 아이디어까지 적극 수용해 자세교정 책상과 의자인 ‘백솔루션’을 내놓았다. 직원들과 매주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머리를 맞댄 결과 음식을 천천히 조리한 뒤에 보온까지 해주는 ‘보온히팅쿠커’도 개발했다.
한 대표는 “고객센터나 이메일로 1년에 수십 건이 넘는 창의적 전자제품 아이디어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는 문의가 들어왔다”며 “이제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한경희라는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다 보니 또 다른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회사 안팎으로 브랜드와 대표 한 사람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진 것이다.
생활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 대표가 여자 에디슨으로 불릴 만큼 창의적 느낌을 풍기는 독자 브랜드 구축에 성공했다”며 “하지만 신제품 상당수가 다른 중소기업의 제품에 브랜드만 덧붙인 것이며 회사의 매출 성장도 정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 다음으로 이렇다 할 대박상품이 나오지 못한 탓에 매출이 2009년 976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점점 줄고 있다. 영업이익률도 3%대로 가전업체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 대표도 최근 들어 이런 한계를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다. 한 대표는 “직원들이 나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한 탓에 매출이 1천억 원 문턱을 넘기 어려운 것 같다”며 “한경희 없이도 혁신적 아이디어가 나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미국에 가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사무국을 첫 직장으로 삼았다. 미국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전화교환업무, 레스토랑 서빙, 대형유통업체 영업사원 등 안해본 일이 없다.
한 대표는 국내서 5급 국제고시에 합격해 교육행정사무관으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한 대표는 “CEO는 함부로 아플 수 없고 아파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