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주로 소형 전자제품에 사용되던 원통형 배터리의 공급분야를 전기차로 넓히면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전기차 배터리사업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
LG화학과 중국 CATL 등 경쟁사의 몸집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데다 전기차 배터리 주요 고객사들이 삼성SDI 의존을 낮추기 위한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가 전기차 고객사에 원통형 배터리 공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SDI는 주로 전동공구와 노트북, 보조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원통형 배터리시장에서 5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통형 배터리는 전기차에 널리 쓰이는 각형과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안정성이 높고 차량의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 수명이 길고 유지보수가 편리하다는 장점도 있다.
미국 테슬라가 전기차에 파나소닉의 원통형 배터리를 채용하면서 최대 수요처로 자리잡았고 삼성SDI는 최근 영국 재규어와 원통형 전기차 배터리의 공급 계약을 맺는 성과를 냈다.
삼성SDI는 전기차시장에서 원통형 배터리의 수요 증가를 기대해 증설 투자도 늘리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원통형 배터리는 재규어뿐 아니라 여러 전기차 신생기업에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삼성SDI는 중국과 한국, 말레이시아의 공장에 모두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가 미국 테슬라에 공급될 가능성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삼성SDI는 이미 테슬라의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쓰이는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테슬라의 성공으로 전기차에 원통형 배터리 채용이 늘고 있다"며 "재규어에 이미 공급 실적을 확보한 삼성SDI가 수요에 대응하며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삼성SDI가 원통형 배터리를 전기차분야로 확대하는 것은 수요 대응에 비교적 소극적으로 나선 경쟁업체와 차별화하고 고객사 기반을 넓히는 효과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최대 경쟁사인 LG화학은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배터리는 원통형이 아닌 파우치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전기차 배터리시장의 경쟁환경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 홈페이지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44.2GWh(기가와트시) 규모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9% 급증했다.
1위 일본 파나소닉의 출하량 증가율은 74.4%를 보였고 2위 중국 CATL는 160%, 3위 BYD는 115%에 이르는 가파른 성장을 나타냈다. LG화학의 출하량은 같은 기간 34.7% 늘어 4위에 올랐다.
삼성SDI는 상반기에 헝가리의 새 배터리공장 가동을 시작했지만 출하량 증가율은 27.6%에 그쳐 6위를 보였다.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와 비교해 소폭 줄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은 꾸준한 증설 투자에 힘입어 2020년까지 약 30GWh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선두기업인 CATL의 생산능력은 2020년까지 50GWh, LG화학은 80GWh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삼성SDI가 경쟁사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고객사인 폴크스바겐과 BMW를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해 전기차 배터리를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키워내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배터리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삼성SDI가 기존 고객사들의 전기차 배터리 물량을 빼앗길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기대 만큼의 성과를 보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에너지전문매체 일렉트렉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SK이노베이션과 손을 잡고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를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의 대규모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 테슬라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팩(왼쪽)과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
폴크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과 합작공장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수급 비중을 높이면 삼성SDI와 같은 기존 공급업체들에 타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삼성SDI가 전기차 배터리 주요 고객사로 앞세우고 있는 BMW도 이르면 내년 말부터 자체적으로 생산한 배터리를 전기차 일부 모델에 탑재하겠다는 계획을 30일 발표했다.
폴크스바겐과 BMW는 모두 차세대 배터리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도 직접 개발해 중장기적으로 전기차에 자체 기술로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기차시장의 성장에 맞춰 배터리업체와 완성차업체의 기술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삼성SDI는 이미 압도적 기술 우위를 확보한 원통형 배터리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유리하다.
삼성SDI 관계자는 "원통형 배터리를 셀 형태와 패키지 형태 등으로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다양한 용량과 성능으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