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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왼쪽) 현대기아차그룹 부회장과 정몽구(오른쪽) 회장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으로부터 완전히 경영을 승계받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바로 현대기아차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대기아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자동차 지분 20.8%,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지분의 33.9%, 기아자동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주요 계열사들은 지분 흐름상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는 3개 계열사에 종속돼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은 현대차의 자회사이다. 현대제철은 기아차의 자회사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의 자회사에 해당한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현대제철을 비롯해 소수의 핵심 계열사 주식을 취득함으로써 현대기아차그룹 전반에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 수는 모두 57개에 달하지만 정 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는 9개에 불과하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7.0%, 현대자동차 5.2%, 현대제철 11.8%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정의선 부회장은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계열사 중 기아자동차 지분 1.7%와 현대자동차 지분 0.003%만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 면에서 정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아직 미미하다. 따라서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서 정 회장이 보유한 핵심 계열사 지분을 그대로 증여받거나 별도로 자금을 확보해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
정의선 부회장이 정몽구 회장의 핵심 계열사 지분을 넘겨받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은 3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현대제철의 주식가치는 6조 원에 이르는 데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증여받은 재산의 최대 50%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기아차, 이노션, 현대글로비스 등 8개 계열사의 지분가치는 3조 원이 넘어 증여세를 낼 여력은 있다.
증여세도 문제지만 정 부회장이 정 회장의 지분을 증여 받을 경우 순환출자 고리까지 떠맡게 된다는 부담이 있다. 따라서 정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기보다 직접 현대모비스 지분 늘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현대기아차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계열사다. 현대모비스를 장악하면 자연스레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정 부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현대모비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최소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1조5천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경영권을 승계받는 동시에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최대 6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현대모비스의 지분은 기아차가 16.9%, 정 회장이 7%, 현대제철이 5.7%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취득해 현대기아차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공고히 할 경우를 산정하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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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제네시스 신차발표회에서 내빈들을 영접하고 있다. |
최근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이 정 부회장 경영권 승계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두 계열사 간 합병으로 정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이번 합병은 현대엔지니어링이 자산가치가 더 높아 현대엠코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주식 비율은 1대 0.18이다. 합병이 성사되면 정 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올라서는데 우호지분을 합치면 사실상 최대주주나 다름없다. 정 부회장은 합병 전 현대엠코 지분 25%를 보유했다. 합병가액 기준으로 정 회장의 주식 평가액은 3590억 원에 달한다. 2004년 현대엠코 지분을 사들이는 데 375억 원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가치가 10배 가량 증가했다.
합병회사를 단독상장하거나 현대건설과 추가합병해 우회상장할 경우 정 부회장의 자금력은 더욱 탄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합병회사 지분을 파는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해 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대규모 합병을 통한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 시나리오에 변수가 등장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주요 주주인 KBD산업은행이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에 불참하면서 합병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합병을 결정하면서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의 보유주식을 회사에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금액이 1천억 원을 넘으면 합병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즉 반대하는 주주가 6% 이상이면 합병은 없던 일이 된다. 지분 7.42%를 보유한 KBD산업은행는 주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의결권 위임을 통해 찬반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또 현대건설 지분 9.8%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에서도 합병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번 합병으로 현대건설의 지분율 하락과 주주가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72.5%를 보유하고 있는데 합병이 되면 35.5%로 떨어진다. 또 합병법인의 가치산정 과정에서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이 과소평가됐다고 지적한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는 오는 19일까지 현대엔지니어링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 3월 말까지 현대엠코의 구주권 제출 및 양사의 채권자 이의제출기간을 거쳐 오는 4월1일 합병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