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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부 다이소 회장 |
1천 원짜리를 주로 파는 다이소가 올해 1조 원 매출을 달성한다.
박정부 다이소아성산업 회장이 1997년 서울 천호동에 처음 매장을 연 지 15년 만에 이룬 성과다.
다이소는 1천~2천 원짜리 생활용품이 전체 판매상품의 90%가량을 차지하는 균일가 매장이다.
다이소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지난해 8850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1조5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정부 회장은 다이소가 취급하는 상품을 장기적으로 5만여 개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매장은 1300개로 늘려 매출 1조5천억 원을 이뤄내려 한다.
◆ 매출 1조, 매장 1천개 돌파 목표 눈앞
박정부 회장은 올해 초 경영목표로 매출 1조 원, 매장 1천 개 돌파를 제시했다. 다이소는 그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다이소의 매출이 12월 중순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점쳐진다. 매장 수도 9월 말 기준으로 970개를 넘어섰다.
다이소에서 파는 전체 상품 가운데 88%가 1천~2천 원 수준이다. 다이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비교해도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았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다이소를 찾는 소비자는 더욱 늘었다. 전국 다이소 매장을 찾는 소비자는 하루 평균 5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낮은 가격만으로 다이소의 성장이 설명되지 않는다. 다이소가 1997년 국내에 등장한 뒤 비슷한 균일가 매장이 속속 생겼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것은 다이소뿐이다.
전문가들은 다이소가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는 이유로 3만 여개에 이르는 다양한 상품과 가격에 비해 좋은 품질을 꼽는다.
◆ 3만 개의 상품과 가격 대비 높은 품질
다이소가 취급하는 상품은 총 3만여 개다. 다이소에서 파는 칫솔의 종류만 70가지나 된다. 수세미 종류는 100여 가지, 면봉은 40여 가지에 이른다.
다이소는 매달 600개 이상의 신상품을 내놓는다. 다이소의 상품개발팀과 디자인팀에서 고객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분석한 뒤 상품을 개발한다. 다이소에 소속된 디자이너만 50명이 넘는다. 생산은 모두 협력사가 맡는다.
다이소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 동남아, 중동, 유럽 등 세계 30여 나라, 2천여 협력사로부터 상품을 받는다.
다이소는 애견용품이나 원예용품, 파티용품처럼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오랜 시간 일본과 무역업을 해 온 경험으로 일본에서 유행한 상품들이 평균 5년 뒤에 국내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파티나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DIY(가구나 소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 등은 모두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것들이다.
다이소는 매년 분야별로 아이디어 상품도 꾸준히 출시한다.
알뜰치약짜개, 발광다이오드 귀이개, 미용실에 가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만들어주는 헤어스틱 컬 등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지금도 다이소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몇몇 상품은 다이소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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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부 다이소 회장이 지난 9월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다이소 남사물류센터에서 열린 제3회 회장님과 대화 ‘열린광장‘에서 직원들과 대화하고 있다. <다이소아성산업> |
◆ 납품업체와 신용, 직접 품질 관리
박 회장은 1944년생으로 올해 70세다. 그런데도 국내외를 오가며 인건비와 원자재 비용을 절감할 곳을 찾아 직접 거래를 맺는다.
박 회장은 구매단가를 낮추기 위해 납품업체와 신용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다. 박 회장이 직접 거래처를 찾아가고 관계를 지속하는 데 힘을 쏟는 이유다. 그는 1년에 3~4개월은 외국에서 보낸다.
박 회장은 다이소 창업 전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일본에 물건을 납품한 경험이 있다. 이 때 쌓은 경험과 상품을 보는 안목은 다이소의 경쟁력 가운데 하나다.
박 회장은 한양대학교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구로공단, 인천남동공단 등에서 생산관리 일을 했다. 그뒤 직접 무역회사를 설립한 뒤 일본에 여러 생활용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일본인을 상대하며 품질에 대한 눈을 높였다.
다이소는 처음 들여오는 상품에 대해 총 4단계의 과정을 거쳐 품질을 검증한다. 담당직원이 판매가 가능한지를 따져 보고하면 팀장, 제품총괄 상무를 거쳐 박 회장이 상품의 입점을 판단한다.
박 회장은 다이소에 들여오는 대부분의 상품을 직접 사용하며 품질을 검증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건에 하자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본다.
박 회장은 균일가 매장이 속속 생기며 그들이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할 때도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박 회장은 상품의 품질이 결국 균일가 매장의 미래를 결정할 것으로 봤다.
다이소의 3만여 상품 가운데 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비율은 51%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상품 비율 37%보다 높다. 화장품, 문구, 식품 등은 거의 100%가 국내에서 생산된다.
박 회장이 품질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다이소의 생존과도 맞닿아 있다. 한 명의 소비자가 계속 다이소를 이용하게 하려면 결국 품질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소비자는 품질이 나쁘면 1천 원도 비싸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그때부터 이 사업은 깨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현금거래로 가격 낮춰
다이소는 다른 회사들이 원가에 이윤을 붙여 소비자가격을 정하는 것과 달리 가격을 먼저 정한다.
소비자들이 살 수 있을 만한 합리적 가격을 정한 다음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비용을 절약한다. 포장을 간소화하고 물류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낭비요소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판매가가 낮게 정해지고 나면 제조사의 납품가를 받아들이는 게 도저히 불가능할 때가 많았다.
박 회장은 대신 원하는 가격을 제시하면서 대안을 제안했다. 현금으로 대량구매하거나 장기계약을 맺었다. 또 디자인이나 포장에서 거품을 빼는 식으로 원가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나갔다. 지금까지도 박 회장은 현금거래를 고수한다.
다이소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대부분 비싸도 5천 원을 넘지 않으며 1천 원짜리가 절반을 차지한다. 물가가 오르면서 3천 원 이상의 상품이 늘었지만 종이컵과 면봉 등 주요 생활필수품 100여 종은 10년째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다이소 전체 매출의 85% 이상이 1천~2천 원짜리 상품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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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엑스몰에 연 다이소 플래그십 매장 |
◆ 지역별 매장 차별화 전략
다이소는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개장한 코엑스몰에 처음으로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이 매장은 코엑스몰을 방문하는 20~30대 젊은층을 고려해 기존 다이소 매장보다 사무, 인테리어, 디자인, 미용용품 등이 특화되어 있다.
박 회장은 플래그십 매장을 통해 저가 이미지를 벗고 젊은층 공략을 강화하려고 한다.
다이소는 전국에 970여 개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초반에 주로 지하철 역사 안에 작은 규모의 매장을 열었던 데서 벗어나 점점 매장 크기를 키우고 있다. 300~500평 이상의 초대형 매장도 여럿이다.
박 회장은 앞으로 최대한 넓은 매장을 많이 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다이소가 취급하는 상품이 늘어나면서 매장이 좁으면 제대로 진열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물건을 진열하면 그만큼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인건비나 임대료가 늘어도 더 이득을 본다.
박 회장은 다이소의 인테리어도 중시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저가 이미지를 벗어야 고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 좁은 매장에 상품을 빈틈없이 진열했다면 요즘은 깔끔한 매장에서 넓고 편하게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다이소는 현재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국내 유명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백화점에도 입점해 있다.
다이소는 1호점을 낸 지 10년 만인 2007년 서울 강남에 진출했다. 임대료가 비싼 강남지역에서 1천 원짜리 다이소가 성공할 수 있을 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다이소 내부에서도 나왔다.
지금 다이소는 강남 주요 상권에 입점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역에도 2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박 회장은 같은 다이소라도 입점한 곳마다 상품 구성을 다르게 했다.
대학가 주변에 문구나 미용용품, 대학가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을 위한 생활용품들이 많다. 대치동과 압구정동의 다이소는 애견용품과 여행용품, 미용용품의 비중이 높다. 주택가나 아파트단지 근처의 다이소는 주부들과 가족단위 고객들이 주로 찾는 상품을 많이 들여놨다.
◆ 일본 다이소와 관계는?
박 회장은 1992년 아성산업을 설립했다. 야노 히로타케 일본 다이소 회장을 설득해 1997년 서울 천호동에 다이소의 전신인 ‘아스코이븐프라자’ 1호점 매장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저가 균일가 매장이다.
1호점을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환위기가 시작됐다. 저가매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크게 늘면서 다이소와 비슷한 저가 균일가 매장이 여러 개 문을 열었다. 하지만 다이소만 살아남았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다이소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자 일본 다이소에서 조건 없이 파트너십을 맺자고 제안해 왔다. 2001년 일본 다이소가 지분 참여를 하면서 한일 합작법인이 됐다.
다이소아성산업은 일본 다이소와 함께 설립한 합작법인이지만 박정부 회장의 지분이 43.2%로 일본 다이소의 34.2%보다 더 많다.
일본 다이소와 제휴하면서 소비자들의 신뢰도도 높일 수 있게 됐다. 출점 4년 만인 2002년 100호점을 돌파하면서 다이소아성산업으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다이소는 일본과 인연 때문에 한때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후원기업이라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다이소아성산업은 일본 다이소에 브랜드 로열티뿐 아니라 수익 배당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수입해 판매하는 물건도 거의 없다. 오히려 일본 다이소에 연간 1억5천만 달러 정도의 상품을 수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