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에 지금 김용환 부회장이 있다면 삼성그룹에는 예전에 이학수 고문이 있었다.
‘2인자 이학수’는 그 누구에게도 없었던 2인자의 힘을 보여줬다. 삼성그룹에서 그가 보여준 예리하고 능수능란한 역할의 2인자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그는 1인자에 버금가는 2인자였다.
하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이 세상 일의 이치일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하루 아침에 내침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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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 |
이학수 고문은 ‘이건희의 오른팔’로 불리며 37년 동안 삼성과 함께 해왔다. 소병해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19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 동안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하며 이건희 회장의 2인자 역할을 했다. 그런 이학수 고문이 2010년 11월 갑자기 자리를 잃었다. 삼성물산 고문으로 물러난 것이었지만 사실상 추락이었다.
당시 갑작스런 사건처럼 보였지만 삼성 내부에선 이건희 회장이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결단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이건희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경영에서 물러났던 2008년 초부터 2010년까지 2년 동안 고민을 거듭하다 결심했다는 것이다.
삼성의 한 전직 사장은 “그 때 이 회장은 대중들 앞에 나설 수도 없을 만큼 큰 상실감을 겪었지만 이 고문은 힘이 더 세져 심지어 이 고문이 삼성의 주인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말했다.
2인자의 처신 가운데 하나로 '1인자를 알고' 2인자로서 '제자리에 머무를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게 있는데, 이 고문은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 고문이 삼성의 주인"이라는 말은 이 고문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두번 나오면 시기하는 말이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자주 듣다 보면 의심이 생기게 된다.
이건희 회장이 이학수 고문을 내친 뒤 2011년부터 삼성그룹 내에서 ‘부정척결’이 강조되면서 쇄신인사가 진행된 것도 사실상 이 고문과 그의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시각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과정에서 이 고문은 재직 당시인 2006년 630억 원에 L&B타워를 구입해 부인 등이 대주주로 등록한 별도의 회사를 설립한 점이 주변에서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이 고문 추락의 결정적 원인으로 이 고문이 삼성그룹 내에서 ‘조직’을 구축하려 했다는 것을 꼽는 사람들이 있다. 1인자에 대한 ‘그림자 보필’을 넘어 ‘이학수 라인’을 구축하다 결국 토사구팽을 당했다는 것이다.
19년 삼성맨이었던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 대표는 2007년 이 고문을 비판한 ‘고리디우스의 매듭’이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삼성이 성장보다 경영권 세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중요보직에 특정 사람을 오래 앉힌다”며 “실제 삼성을 움직이는 것은 이학수 사단”라고 주장했다.
'이학수 사단'이라는 말은 이 고문의 추락의 이유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초다.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경영권 이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고문이 권력 승계 안착이라는 역할을 넘어 권력 승계 이후를 겨냥해 ‘이학수 사단’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이런 욕심이 과욕으로 이 회장에서 받아들여졌고 화를 자초하는 불씨가 됐다는 분석이다.
물론 그 씨앗은 이건희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서 잉태됐다. 이건희 회장은 전형적인 ‘은둔형’ 경영자다. 경영 2선에 물러난 모양새를 취하면서 비서실과 계열사 전문경영인을 통해 그룹을 경영해 왔다. 2인자의 힘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2인자의 힘이 세지면 어쩔수 없이 권력투쟁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특히 권력 승계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 고문의 추락도 오너 3세인 이재용 부회장으로 승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해석이 있다.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재벌은 총수가 직접 경영을 하기 때문에 2인자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은둔형 경영을 하기 때문에 총수와 2인자 사이의 갈등은 권력투쟁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이학수 고문의 운명은 그동안 삼성의 역사로 볼 때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고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때도 이 회장은 당시 2인자인 소병해 실장과 갈등이 많았다. 소 실장은 이병철 회장이 재직할 때인 1978년부터 시작해 이 회장 취임 이후인 1990년 말까지 장장 12년간 2인자의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소 실장은 이 회장이 부회장 시절부터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의 전직 고위임원은 “소 실장이 이 부회장의 뒷조사를 시켰는데 이병철 회장에게 조사내용을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이 회장이 이를 알고 몹시 기분 나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 회장은 취임 후 3년 동안 소 실장 자택의 모든 서류와 자료를 걷어갔다고 한다. 소 실장이 자료를 무기로 ‘안전’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 고문은 삼성의 2인자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 작업을 비롯해 정치권이나 검찰과 관계를 도맡아 왔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회장은 생전에 이를 완벽히 정리하겠다고 결심을 굳혔을 것이다.
이 회장으로서는 스스로 걸어온 길을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되풀이 겪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2012년 6월 이 회장은 ‘이재용의 가정교사’로 불리던 최지성 실장을 미래전략실 부회장 자리에 앉혔다. 이 고문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려는 조처로 풀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