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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유동성 위기의 급한 불은 껐다. 현대 가문의 도움을 받아 애물단지였던 서울 가산동 하이힐아울렛을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목돈이 마련된 것이다.
6일 KTB사모펀드는 모두 3400억 원의 펀드를 조성해 하이힐아울렛을 인수하기로 했다. 한라가 500억 원, KCC가 500억 원, 현대백화점이 400억 원, 저축은행이 2100억 원을 펀드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힐아울렛은 현대백화점이 위탁받아 운영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은 “리모델링을 진행해 오는 6월 그랜드 오픈과 함께 운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힐 매각으로 한라는 500억~7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공사미수금과 시행사 대여금 등으로 매각대금 1천100억 원이 유입된다. 그러나 사모펀드에 500억원을 다시 투자해야 한다.
정 회장은 건설경기 침체로 자금위기를 맞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한라는 2012년 1조9691억 원의 매출액을 냈지만 2390억 원의 적자를 봤다. 지난해도 3분기까지 26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 회장은 자금 마련을 위해 지난해 3월 유상증자를 했다. 정 회장과 만도의 자회사인 마이스터가 모두 3435억 원을 한라에 투입했다. 당시 상법상 상호주식 의결권 행사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 마이스터를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거센 비난에 직면했고 고발도 당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6월 “마이스터를 통한 한라 증자 참여로 만도의 순이익이 감소하고 부채비율이 증가하는 등 재무건전성이 나빠졌다”며 정 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한라는 매년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5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자 나이스신용평가는 2012년 A-에서 BBB+로, 2013년 BBB로 신용등급을 계속 내렸다. 신용등급이 떨어지자 회사채 이자율이 높아졌고 유동성 확보는 더 어려워졌다.
한라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건설경기 탓도 있지만 채무보증을 잘못 선 이유도 있다. 여주골프장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2012년 1월 한라는 여주골프장 세라지오의 시공사인 상우산업개발에 640억 원 채무보증을 섰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상우산업개발이 해마다 적자를 내면서 한라의 부담이 커졌다. 한라는 결국 지난해 7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채무를 대납하고 회사를 인수했다.
정 회장은 골프장 등 부동산 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순탄치 않았다. 한라는 지난 7월에 인수한 세라지오 골프장, 제주 세인트포 골프장 등을 매각하려고 했으나 대금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은 매번 결렬됐다. 또 지난해 10월 영종도 하늘도시와 파주의 한라비발디가 미분양 사태를 맞자 30% 할인한 값으로 분양했다. 이 때문에 “입주 석 달만에 1억원 이상 아파트 값이 떨어졌다”며 기존 계약자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산동 하이힐아울렛은 정 회장에게 애물단지였다. 2011년부터 하이힐아울 매각을 시도했으나 협상은 번번히 결렬됐다. 이번에 비로소 현대백화점과 KCC 등 현대가의 지원을 받아 매각에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라그룹은 정주영 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인영 회장이 1987년 현대양행에서 독립해 세운 기업그룹이다. 한라(옛 한라건설)와 만도를 주력기업으로 거느리고 있다. 정몽원 회장은 정인영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현대백화점은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지선 회장이 맡고 있다. KCC는 정주영의 일곱째 동생 정상영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진 회장이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