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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주요 화장품 원브랜드숍들은 CF모델을 동원한 광고 외에도 서로 치열한 할인경쟁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수지(더페이스샵), 윤아(이니스프리), 손예진(미샤), 크리스탈(에뛰드하우스), 태연(네이처리퍼블릭). |
국내 화장품시장의 대세는 원브랜드숍이다. 지난해 국내 화장품시장 규모 10조 원 가운데 30% 정도인 2조9천억 원을 원브랜드숍이 차지했다.
원브랜드숍은 매장에서 하나의 화장품 브랜드만 판매한다. 예를 들어 LG생활건강의 원브랜드숍인 더페이스샵 매장에서 오직 더페이스샵 브랜드만 파는 방식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합리적 제품을 제공한다는 점을 앞세운다.
원브랜드숍 시장도 포화상태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원브랜드숍이 대규모 세일로 출혈경쟁을 벌인다.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손해를 전가하면서 ‘갑의 횡포’ 논란에 직면하고 있다.
◆ 원브랜드숍이 ‘연중세일’ 내건 이유는
370일. 5개 주요 화장품 원브랜드숍이 지난해 할인행사를 한 날을 합친 수치다.
지난해 화장품 원브랜드숍 1위는 더페이스샵이었다. 이니스프리, 미샤, 에뛰드하우스, 네이처리퍼블릭이 그 뒤를 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이 5개 브랜드가 각자 제품세일을 한 날을 더하면 54일이 나왔다. 3년 만에 할인행사 시행일수가 약 7배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원브랜드숍 시장 매출1위에 오른 더페이스샵은 그해에 131일 동안 세일을 했다. 더페이스샵과 선두다툼을 벌이던 ‘원조 원브랜드숍’ 미샤도 74일 동안 제품을 할인했다.
원브랜드숍의 할인경쟁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5개 브랜드가 세일을 진행한 날을 합치면 141일에 이른다. 한 브랜드 당 평균 할인행사 시행일수가 지난해 15일에서 올해 28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할인행사 시행일수와 매출은 비례하지 않는다. 더페이스샵 창업주인 정운호 대표가 이끄는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 약 5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할인행사가 잦고 다른 원브랜드숍보다 할인율도 높다는 점이 영업손실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에이블씨엔씨가 운영하는 미샤도 올해 1분기에만 영업손실 39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달 초 서영필 대표가 미샤를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잦은 할인행사가 오히려 매출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화장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전에 세일이 소비를 촉진했지만 이제 세일 때까지 기다렸다 필요한 제품만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몇몇 원브랜드숍은 올해 들어 할인행사 기간을 줄이면서 다른 마케팅전략을 채택하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 계열사인 이니스프리는 올해 상반기에 총 11일만 할인행사를 했다. 대신 ‘자연주의 화장품’을 내세우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이니스프리는 올해 상반기 매출 2218억 원에 영업이익 441억 원을 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2%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51.5% 증가했다. 할인행사를 적게 하고도 좋은 실적을 냈다.
그러나 똑같이 할인행사 시행일수를 줄였던 에뛰드하우스는 오히려 실적이 떨어졌다. 에뛰드하우스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54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 떨어졌다. 영업이익도 46억 원으로 2013년 상반기의 183억 원에서 크게 감소했다.
원브랜드숍의 한 관계자는 “제품 원가가 올라가도 할인행사 비중이 높아지면 계속 적자가 나는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며 “원브랜드숍이 실적을 회복하려면 반드시 히트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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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그룹이 운영하는 드럭스토어 CJ올리브영의 '2014년 가을 세일' 할인행사가 시작된 지난 17일 수많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해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사진=CJ올리브영 제공> |
◆ 할인경쟁에 같이 끼어든 드럭스토어
할인행사는 원브랜드숍만 시행하지 않는다. 의약품과 화장품을 함께 파는 헬스뷰티용품전문점(드럭스토어)도 대규모 세일을 하면서 원브랜드숍과 경쟁한다.
CJ그룹의 드럭스토어 CJ올리브영은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4일 동안 ‘2014 가을세일’ 행사를 열었다. 행사기간 동안 매장을 찾은 고객은 화장품을 최대 50%까지 할인받아 살 수 있었다.
CJ올리브영은 행사 첫날인 17일 전국 매장 구매고객이 28만 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역대 1일 구매고객 중 가장 많은 수치다.
다른 드럭스토어들도 나란히 할인행사를 시행하면서 CJ올리브영과 맞불을 놓았다.
GS그룹이 운영하는 왓슨스코리아는 지난 17일부터 4일 동안 총 1만여 개의 상품들 최대 50% 싼 가격에 파는 행사를 열었다. 롯데그룹 계열사인 롭스도 그 기간에 9천여 개의 제품을 50%까지 세일했다.
드럭스토어 기업들은 대부분 영업손실 만회를 목표로 세일경쟁에 끼어들었다. CJ올리브영은 지난해 영업손실 31억 원을 냈다. 이후 허민호 대표가 공격적 경영방침을 선택하면서 할인행사를 늘렸다.
다른 드럭스토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왓슨스코리아는 지난해 영업손실 21억 원으로 적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8월 대주주인 홍콩왓슨스와 GS리테일에게 200억 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드럭스토어는 실적악화의 원인중 하나로 화장품 원브랜드숍과 경쟁을 들었다. 할인행사를 자주 시행하는 원브랜드숍에 고객이 쏠리면서 정가를 받는 드럭스토어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드럭스토어 관계자는 “한국 드럭스토어는 수많은 원브랜드숍과 경쟁해야 한다”며 “1년 365일 50% 할인을 하는 가게들과 경쟁해 수익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드럭스토어들도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할인행사를 선택함에 따라 원브랜드숍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드럭스토어는 일반적으로 매년 1회 할인행사를 시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지난해 CJ올리브영이 총 3번 대규모 세일을 하는 등 점차 드럭스토어도 세일횟수를 늘리고 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드럭스토어의 할인행사 시행일수와 기간이 늘어나면서 과거 화장품 원브랜드숍과 같은 상황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브랜드 ‘갑의 횡포’에 우는 가맹점주
원브랜드숍과 드럭스토어의 출혈세일 경쟁이 이어지는 와중에 계약을 맺고 매장을 운영하는 가맹점주들이 피해를 보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 원브랜드숍 본사가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부당행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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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한 토니모리 대표 |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3일 가맹희망자에게 기본 의무사항인 정보공개서 제공 및 가맹금 예치를 시행하지 않은 혐의로 원브랜드숍 토니모리에게 시정명령 및 과징금 5천만 원을 부과했다.
토니모리는 2008년 11월부터 약 2년 동안 가맹희망자 113명에게 정보공개서를 제공하지 않고 가맹계약을 체결했다. 토니모리는 가맹희망자가 낸 가맹금을 최소 2개월 동안 예치금융기관에 예치해야 하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토니모리는 지난해에도 여천에 가맹점을 냈던 한 사업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뒤 상품공급을 끊고 인근에 신규가맹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토니모리가 법률에 맞는 계약해지 절차를 지키지 않고 같은 상권에 새 가맹점을 내 불이익을 줬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시정명령을 내렸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해 7월 더페이스샵과 토니모리 및 네이처리퍼블릭을 공정위에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원브랜드숍 본사가 가맹점주에게 ‘물량 밀어내기’로 알려진 물건 강제구입을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또 판매목표를 이루도록 압력을 넣거나 같은 상권에 신규 가맹점을 출점하는 등 영업침해 행위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당시 “화장품 원브랜드숍 가맹본부의 불공정거래 행위유형과 특성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제보자들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최근 원브랜드숍이 급속히 팽창중인 것을 생각하면 화장품업계 전반에 불공정거래 행위가 만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원브랜드숍 가맹점주들의 피해가 잇따르자 지난 3월 ‘가맹거래 정보공개서 표준양식 고시’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 개정안에 가맹점주를 희망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정보공개 내용을 확대하는 방안이 담겼다.
개정안에 따라 원브랜드숍 본사는 본사가 가맹점주의 경영 및 영업활동을 어떻게 지원하는지도 기재해야 한다. 본사는 가맹계약 체결 2주일 전까지 이러한 내용이 추가로 담긴 정보제공서를 반드시 가맹점주 희망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이 시행된 뒤에도 원브랜드숍 본사와 가맹점주의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4일 부산에서 한 브랜드 매장을 운영하던 가맹점주가 “가맹본부가 직영점과 가맹점을 차별하고 부당하게 대우해 폐점하겠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매장에 붙인 것이 SNS로 퍼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