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의 운명이 국민연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전제로 국민연금 등 사채권자들이 채무를 재조정하는데 동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국민연금도 채무재조정을 놓고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대우조선해양이 다시 벼랑 끝에 설 수도 있다.
◆ 국민연금, 정부대책에 퇴짜 놓기 쉽지 않아
26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의 출자전환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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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조정안에 찬성할지 혹은 반대나 기권을 할지를 두고 이번 주 안에 내부회의를 열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쉽게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해양이 갚아야 하는 회사채 1조3500억 원 가운데 30%가량인 3900억 원을 보유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 금융투자업계, 시중은행들이 나머지 50%를 나눠 보유하고 있고 개인투자자들이 20%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회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살리기로 방침을 정한 만큼 국민연금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채무조정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이 정부로부터 기금관리를 위탁받은 공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정부가 짜놓은 판에 내놓고 반대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살리는 데 국민의 노후연금이 또다시 동원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감수해야 하는 만큼 국민연금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박근혜 게이트’에 연루돼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에 찬성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쓰일 돈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를 사실상 도왔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았다.
국민연금이 당분간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는 점도 쉽게 찬성을 결정할 수 없는 이유다.
대우조선해양이 사채권자집회를 소집하기 위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채권자들이 출자전환에 동의할 경우 배정받게 되는 신주의 발행가격은 주당 4만350원이다. 이는 현재 대우조선해양 주가보다 10% 낮은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주가가 오르면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지 않았다고 안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내 조선업계를 대우조선해양을 제외한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2사체제로 재편하기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가치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해양 주식거래는 이르면 상반기 안에 재개될 것으로 관측되는데 현재 주가(4만4800원)보다 10% 이상 내릴 경우 국민연금이 떠안아야 하는 손해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 반대하기도 어려워
그렇다고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다.
정부는 사채권자들이 채무재조정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사전회생계획제도(P-Plan)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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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
사전회생계획제도는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의 장점을 합친 것으로 법원의 결정에 따라 채무자들이 보유한 채권규모가 강제로 줄어들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이 사전회생계획제도를 밟을 경우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안에 찬성했을 때 보게 될 손실보다 더 큰 규모의 손실을 입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투자원금 대부분을 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바라본다.
사전회생계획제도가 글로벌 발주처들에게 대우조선해양이 청산절차를 밟는다는 신호로 해석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경우 발주처들은 대우조선해양과 맺었던 계약을 취소하고 선수금을 반환할 것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대우조선해양이 정상기업으로 활동하는 데 더욱 제약을 받게되면서 이른 시일 안에 청산절차를 밟아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출자전환의 적정성과 대우조선해양 경영개선계획의 합리성, 기업가치 보전 방안, 법률적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기금의 장기적인 이익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규정에 따라 신중하게 결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