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12월] 신유열, 부친 후광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만의 상징 가져야

▲ 올해 롯데그룹의 연말 인사는 파격과 혁신이라는 두 단어가 공존한다. 20명의 계열사 CEO가 교체되고, 4명의 부회장이 자리를 떠났다. 사진은 롯데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 < Freepik >

[비즈니스포스트] 롯데그룹이 지난 달 26일 최고경영자(CEO)의 3분의 1에 달하는 20명의 CEO를 교체하고, 부회장단 4명은 전원 용퇴를 시키는 고강도의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지난해 14명의 CEO를 교체한데 이어 또 다시 ‘롯데 CEO의 흑역사’가 재연된 것이 아닌가하는 논란이 있었다. 연말이 되면 롯데 CEO 자리가 ‘파리 목숨이 된다’는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닌 듯싶다. 

이번 롯데그룹의 인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좋게 포장하면 ‘내부 인재 발탁’, ‘세대교체’라고 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은 유통과 화학 부문에 여러 차례 외부 영입을 단행했지만 아쉬운 성과를 기록했다. 결국 ‘구관이 명관’이라고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그룹으로 입사해서 회사의 사정을 잘 아는, 누구보다도 현재가 롯데그룹의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는 이들에게 CEO 자리를 맡긴 것이다.

또한 ‘신동빈의 남자’로 불리던 부회장 4명이 짐을 쌌다. 신동빈 회장이 화학, 유통, 렌탈,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M&A를 진행하고, 사업을 확장할 때 생사를 같이 했던 인물들이었다. 롯데그룹이 재계순위 5위까지 올라온 것은 누가 뭐래도 신 회장이 주도한 M&A가 큰 역할을 했다. 이들 부회장은 지근거리에서 회장을 보필하면서 성장을 주도했지만 퇴장만큼은 아름답게 매듭지지 못했다. 

신 회장의 M&A가 어느 정도 실적을 보이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눈에 띄게 하락하자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 칼을 빼들었다고 볼 수 있다. 최종 결정권자(오너)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에 소위 말하는 ‘월급쟁이 부회장’을 날렸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물론 여기에는 신동빈 회장의 후계자인 장남 신유열이라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유열로 대변되는 ‘장강의 물’이 그룹 내에서 입지를 다지고 주요 신사업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노무라 증권에서 사회 경험을 시작했다. 증권회사는 기업의 빠른 성장 및 신시장 진출을 위한 M&A를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유열 실장 역시 장기적으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업을 사고 파는 ‘M&A’로 그룹 성장을 꾀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신유열 실장이 아버지 신동빈 회장을 뛰어넘을 수 있느냐다. 어쨌든 신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전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닦은 토양, 자양분을 받아서 인수합병으로 그룹을 키운 커리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신 명예회장이 남긴 엄청난 부동산은 롯데그룹이 힘들 때나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할 때에 든든한 동아줄이 된 것은 사실이다.
[데스크리포트 12월] 신유열, 부친 후광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만의 상징 가져야

▲ 롯데그룹 내부의 세대교체 흐름은 올해 인사에서 뚜렷했다. 이 변화의 이 변화의 중심에는 39세 신유열 부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롯데그룹>



◆ 전임자와 결별 선언하고, 유산을 비방하라

후계자는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기를 갈망하고 아버지의 그늘에 묻히는 것을 싫어하며, 구세대와 대조라는 존재감을 가지고 싶어 한다. 구세대와 거리를 유지하려면 때로 상징이 필요하다. 루이 14세는 통치 초기인 1640년대 말, 내란에 빠진 프랑스를 수습하고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선왕들이 쓰던 루브르 궁전을 물려받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자신만의 궁전을 새로 지었다. 이는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다는 상징이었다. 그는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새로운 상징을 창출했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아무것도 없는 언덕에 에스코리알궁을 세워 권력의 중심으로 삼은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 속에서 되풀이해 나타나는 어리석은 착각이 하나 있다. 바로 전임자의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이용하면 똑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미신과 같은 믿음이다. 창의력이 없는 사람은 이러한 진부한 접근 방식에 이끌린다. 그러한 방식이 따라 하기 쉽고, 그들의 나태함이나 소심함과도 어울리기 때문이다. 

최근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스타필트’라는 야심작으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신세계, 어머니가 이마트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정 회장은 스타필드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일구고 내세우려 한다. 그동안 정 회장은 여러 브랜드와 사업을 시도했다. 크게 성공한 사업 아이템이 눈에 띄지 않지만, 그는 최근 ‘스타필드’와 ‘트레이더스’로 어머니의 후광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듣는다.

전임자가 위대하고 강력한 인물일수록 도처에는 과거의 상징으로 가득하다. 한마디로 후계자가 이름을 부각시킬 공간이 없다. 이럴 때 후계자는 맑은 눈으로 빈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 후계자가 들어가서 빛나는 최초의 인물이 될 수 있는 공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밝히기는 그렇고,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그룹 회장은 올해 연세가 여든 하나인데도 그룹의 모든 의사결정을 여전히 본인이 결정한다. 아들이 부회장으로 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버지의 심기를 살피고, 아버지의 결정을 뒷수습하는 일이다. 아버지가 자주 하는 말은 아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OO이 놈이 뭘 알아”였다. 아들 역시 내년이면 나이가 오십이라는 ‘지천명(知天命)’이 된다.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에 자리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망령이 되살아나 덮칠 것이다. 그리고 3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경영권 승계의 덫’에 걸릴 것이 명확하다.

과거는 젊은 영웅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부담스러운 과거를 제거하고 그 빈자리를 채울 줄 알아야 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없애야만 새로운 질서 창조를 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몇 년 사이에 신유열 실장이 맞닥뜨릴 가장 큰 난관(難關)이 될 것이다. 장원수 유통&4차산업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