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프리카 도서국가 모리셔스 포트루이스 해변에 20일(현지시각)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플라스틱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기후변화가 플라스틱 오염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27일(현지시각) CNN은 국제 학술지 '프론티어 인 사이언스'에 등재된 보고서를 인용해 기후변화가 물, 토양, 대기, 야생동물 등을 대상으로 한 미세 플라스틱 오염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보고서는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습도, 햇볕 강도의 상승은 플라스틱이 분해돼 미세입자로 분열하기 쉬운 조건을 조성한다.
구체적으로는 여름철 폭염 발생 기간 동안 기온이 평년치보다 10도 더 오른다고 가정하면 플라스틱 분해 속도는 두 배 더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홍수, 강풍, 폭풍 등 강해진 각종 기상재난들은 분해된 미세 플라스틱 입자를 더 널리 퍼뜨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중국 홍콩대 연구진이 2023년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등재한 다른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로 강해진 태풍과 폭풍은 미세 플라스틱을 육지로 더 많이 가져오는 것으로 분석됐다.
홍콩대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변 퇴적물 내에 미세 플라스틱은 전보다 최대 36.4배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층 해수에 유입되는 미세 플라스틱은 전보다 최대 6배 늘어났다.
미세 플라스틱은 그 자체로 인간이나 여러 생명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중국 베이징대가 올해 1월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이 뇌 혈관에 유입되면 최소 1주일 이상 잔류하면서 혈류를 방해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혈관의 관류 수준이 낮아지면서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으로 인한 혈류 막힘 현상은 자연 해소가 가능하긴 했으나 신경과 인지 활동에 후유증이 남았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미세 플라스틱이 생산 과정에서 흡수한 영구 화학물질까지 운반하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여러 건강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생태학과가 내놓은 다른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산호, 바다 달팽이, 성게, 홍합, 물고기 등 생물들은 미세 플라스틱이 체내에 누적되면 해수온도 상승과 산성화 등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제시한 보고서가 기존에 발표된 다른 학계 보고서들과 갖는 차별점은 플라스틱을 기후변화의 원인으로만 보던 것과 달리 기후변화가 플라스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은 구성물질의 거의 100%가 화석연료인 특성상 생산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된다.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2024년에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플라스틱 산업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3%로 해운업이나 항공운송산업보다 더 컸다.
플라스틱이 기후변화를 유발하고 강해진 각종 재난이 다시 플라스틱 오염을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이런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물 배출을 줄일 수 있는 국제플라스틱협약뿐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해 11월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가 열린 부산 벡스코. <비즈니스포스트>
원래 2024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를 통해 최종 타결될 예정이었으나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국제플라스틱협약이 생산 규제를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INC-5 당시에는 이들 소수 국가 반대를 제외하면 대다수 국가들이 생산 규제를 포함한 최종 합의문을 지지했다.
하지만 올해 8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린 연장회의(INC-5.2)부터 미국이 반대파로 돌아서면서 강력한 국제플라스틱협약을 향한 지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INC-5.2에서는 유럽연합(EU), 영국, 페루, 콜롬비아 등 '우호국연합' 국가들이 국제플라스틱협약 약화에 반대하면서 최종 협상 타결이 다시 한 번 미뤄졌다.
협상을 주관하는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차 연장회의(INC-5.3)는 내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다. 유엔환경계획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협상은 단 하루만 단판 형식으로 진행되며 별도 부속 협상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지 않는다.
사실상 이번 회의를 끝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이 생산 규제를 포함한 국제플라스틱협약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협상도 심각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테파니 라이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공중보건대학원 부교수는 CNN을 통해 "오늘날 버려지는 플라스틱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전 세계 생태계에 대규모 파괴로 위협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