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정부의 배터리 수출 통제가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망에 차질을 일으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운영에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뉴욕주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 사진. <연합뉴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미국에 생산 거점을 갖추고 중국산 배터리를 대체할 역량을 갖춘 한국 업체들의 중요성이 자연히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이 미국과 무역 분쟁에서 희토류 이외에 배터리를 전략 자원으로 무기화하며 효과적 대응 방법을 찾았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중국 정부는 11월8일부터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사용되는 대형 리튬이온 배터리와 양극재, 음극재와 제조 장비 등 배터리 공급망 전반에 수출 통제를 적용한다.
이미 수출이 제한되고 있는 희토류 또는 일부 핵심광물 소재와 마찬가지로 중국 업체들이 배터리 및 관련 제품을 수출하려면 당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수출 품목을 선택적으로 무기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며 “중국이 확고한 기술 우위를 갖춘 분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배터리 수출 제한 조치는 다수의 미국 기업들, 특히 에너지 분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 수요를 에너지저장장치에 일부 의존하고 있는데 중국산 배터리가 없다면 공급망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사기관 블룸버그NEF는 올해 1~7월 미국에서 수입한 전력망 관련 리튬이온 배터리 가운데 약 65%가 중국산이라고 전했다.
대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활용하는 에너지저장장치는 주로 태양광과 풍력 등 전력 생산이 간헐적으로 이뤄지는 분야에서 에너지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향후 10년 동안 미국에 설치될 것으로 예상되는 에너지저장장치는 136기가와트(GW) 규모로 추산된다. 약 1억2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미국은 현재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급증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에 고전하고 있다. 따라서 에너지저장장치 설치 용량도 빠르게 늘어나야 안정적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배터리 수출 통제가 결국 미국의 인공지능 산업 발전에 ‘아킬레스건’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씽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블룸버그에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은 첨단 반도체 공급망 제약으로 제한을 받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에너지 수요 대응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에 중요한 걸림돌”이라고 전했다.

▲ 중국 CATL의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 홍보용 이미지.
이 과정에서 자연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가장 주목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들 기업은 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에 유일한 대항마로 꼽히기 때문이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이미 미국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운영하거나 건설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도 중국 공급망에 의존을 낮추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중국의 배터리 수출 통제에 따른 타격을 만회하려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는 일이 필수로 꼽힌다.
그동안 한국산 배터리는 주로 미국에서 제조되는 전기차에 탑재됐다. 중국산 배터리와 비교하면 원가 경쟁력이 낮아 에너지저장장치 분야에서 수요 확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수출 통제 가능성은 미국 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및 에너지저장장치 기업들이 중국 제품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대안을 찾아야만 하는 과제를 안기고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이미 미국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에서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에너지저장장치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양산을 시작했다. 전기차에 주로 쓰이는 삼원계 배터리 대비 원가 경쟁력이 높다.
SK온도 최근 미국 고객사와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삼성SDI도 내년부터 미국에서 ESS용 배터리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중국이 배터리 완제품뿐 아니라 흑연과 같은 배터리 핵심 소재를 함께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한 만큼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한국 배터리 제조사들이 반사이익을 보려면 필수 소재 공급망에서 중국에 의존을 낮춰야 하는 과제도 더욱 다급해진 셈이다.
다만 중국의 배터리 및 소재 수출 통제 현실화 여부와 수위는 이른 시일에 미국과 진행할 정상회담 및 무역 논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단순히 협상 카드로 활용되는 데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수출 통제는 이미 내수시장에서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지 배터리 업체들에 타격을 주는 자충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시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