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53년생인 신창재 회장의 나이는 72세지만 그의 승계 계획은 베일에 싸여 있다. <교보생명>
적지 않은 나이인데도 신 회장의 승계 계획은 베일에 싸여 있다. 수십 년 전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 자녀에게 물려줄 것인지, 전문경영인에게 맡길 것인지 불명확하다.
신창재 회장은 1996년부터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1993년에 담도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을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교수로서 펼쳐질 앞날이 전면 수정됐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9년간 재직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직을 내려놨다.
신창재 회장 개인으로서도 큰 결정이었지만 교보생명 내부에서도 ‘낙하산’이라며 반발이 거셌다.
◆ 아버지 ‘낙하산’으로 시작했지만 업계 2위 대형 생보사로 키워
이런 결정은 그동안 신용호 전 회장이 보여 온 냉정한 인사 스타일과 상반되는 선택이었다.
신 전 회장은 1967년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2000년까지 33년간 사장 19명을 갈아치운 인물이다. 그랬던 그가 경영 경험이라곤 없는 산부인과 의사 아들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파격을 넘어 도박에 가까운 선택일 수 있었다.
2003년 신용호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내부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006년에는 교보생명 임원진 20여 명이 집단 사태의사를 표명하면서 신창재 회장과 임원진의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2000년 신창재 회장이 취임한 첫해 교보생명은 영업손실 3029억 원, 당기순손실 2540억 원을 내며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2001년엔 영업이익 2472억 원, 당기순이익 1288억 원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08년에는 당기순이익 2916억 원을 내 생보업계 1위 삼성생명(1130억 원)을 제치고 업계 1위를 11년 만에 탈환했다.
신 회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올해 상반기보고서 기준 교보생명의 총자산은 145조 원이다. 2000년 25조 원에서 25년 만에 6배 가까이 성장했다.
무엇보다 신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아 교보생명을 업계 2위의 대형 생보사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오리무중 승계 계획, 신창재 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은
신창재 회장은 대외적으로 자녀 승계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밝힌 적은 없지만 13년 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나처럼 ‘낙하산’이 아니라, 말단 시절부터 우리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현재 임원들 중에 후계 CEO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언급한 적은 있다.
신창재 회장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버지의 승계 방식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아버지 신용호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승계 결정은 결과적으로 교보생명을 굴지의 생보사로 키워낸 '최고의 인사'가 됐지만, 그 과정에서 신창재 회장과 일가족, 그리고 교보생명은 상당한 대가를 치뤘다.
아버지가 타계한 이후 신 회장과 일가족은 상속세 1830억 원을 냈는데 이는 당시 국세청에 신고된 상속세액 가운데 역대 최고액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조차 신용호 전 회장이 타계 직전까지 보유한 6.23%(115만2550주)에 대한 상속세일 뿐이다.
신 회장은 이 상속세 가운데 대부분을 주식으로 현물 납부했는데 한쪽에서는 이때 줄어든 신 회장의 지분이 오늘날 재무적투자자(FI)들과 분쟁의 씨앗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편 타계 이전인 1990년대 신용호 전 회장은 신창재 회장에게 교보생명 지분 45%가량을 물려줬는데 이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의 증여세를 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당시 교보생명이 적자를 내던 때라 증여세가 줄었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 지분 승계만으로는 증여세만 1조 원 달해
현재 신창재 회장의 자녀들은 교보생명의 지분을 들고 있지 않다. 신 회장이 아버지 때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지분 승계를 한다면 커진 회사의 규모만큼이나 막대한 증여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 회장이 가진 지분(33.78%)을 자녀에게 모두 증여한다고 가정하면 자녀들은 1조 원에 달하는 증여세를 내야 한다.
신 회장의 두 아들은 모두 교보생명에서 일하고 있다.
장남 신중하 상무는 교보생명 입사 10년 만인 지난해 임원으로 승진했다. 차남 신중현 실장은 2020년 교보라이프플래닛 디지털혁신팀 매니저로 입사했다. 김주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