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반도체 관세 '1:1 원칙' 내세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부담 가중

▲ 미국 트럼프 정부가 외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 물량을 자국 내 생산 수량과 동일하게 맞추도록 요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트럼프 정부가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는 물량과 동일한 수량의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는 ‘1:1’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지 않는 기업은 반도체 관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미국에 수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6일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 제조기업들을 겨냥해 미국 내 생산을 늘리지 않는 기업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도체를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는 고객사는 이와 동일한 물량의 반도체를 자국 내 생산 제품으로 확보해야 한다. 해당 비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관세 대상이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늘리면 반도체에 부과될 100% 수준의 관세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번 계획은 이러한 발언의 연장선상”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기업들이 미국에서 반도체 제조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현지 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약속한 생산량만큼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정책 시행 초반에는 유예 조치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현재 관련 당국은 반도체 수입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반도체 관세 정책이 확정될 공산이 크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미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과 해당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를 수입하는 업체들이 이와 동일한 수량의 부품을 자국에서 조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미국에서 반도체를 제조하면 큰 폭의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국 마이크론이나 글로벌파운드리, 대만 TSMC와 같이 이미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은 이번 정책으로 수주를 늘리며 수혜를 볼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정부 반도체 관세 '1:1 원칙' 내세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부담 가중

▲ 삼성전자 텍사스주 오스틴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


다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고사양 반도체는 미국에서 생산이 어려워 한계를 맞을 수도 있다고 바라봤다.

TSMC는 가장 앞선 미세공정 기술을 대만 공장에만 적용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패키징 등 설비도 미국에는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고객사에 공급하는 대부분의 반도체를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정부의 새 정책에 타격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미국 주요 고객사들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반도체와 동일한 물량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수요가 위축되거나 마이크론을 비롯한 미국 경쟁사 제품 수급 비중을 늘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이번 정책에 수혜를 볼 여지도 있다. 최근 애플의 이미지센서 생산을 수주한 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반도체 비중이 큰 만큼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다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도 인공지능 반도체에 필수로 쓰이는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주요 사업에서 관세 리스크에 직면하며 큰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내 생산 투자를 대폭 늘린다면 건설 및 운영비, 인건비 등과 관련해 금전적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에 “미국은 국가 및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반도체 제품을 외국 수입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공식 발표를 내놓기 전까지 정책적 결정에 관련한 모든 보도는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