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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해 1월21일 2016 한국의 밤에 참석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
세계화와 자유주의의 산실 역할을 했던 다보스포럼의 위상이 변화한 세계 경제환경 속에서 예전만 못하다. 국내 재계 인사들도 정경유착 의혹 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황까지 겹치며 다보스포럼 참석이 줄어들었다.
17일부터 나흘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제47회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가 열린다. 이른바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이 행사는 전세계 재계·정관계 인사들이 모여 교류하는 사교의 장이다.
하지만 올해 우리나라의 다보스포럼 참가 규모는 예년만 못한 편이다. 재계에 따르면 올해 포럼에 참석하는 우리나라 인사는 20여 명으로 30명 안팎이던 보통 때에 비해 줄었다.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해 다보스포럼 기간 중 매년 열렸던 한국의 밤(Korea Night) 행사는 올해 열리지 않는다.
한국의밤 행사는 2009년부터 매년 개최돼 세계 경제 리더들에게 한국 기업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자리로 자리잡았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브랜드를 홍보하는 기회로도 활용됐다.
하지만 올해는 주최인 전경련이 해체 압력을 받는 등 행사 진행이 여의치 않아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의 불참도 행사를 취소한 이유가 됐다.
이번 다보스포럼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등이 참석하기는 하지만 주요기업 총수들은 모두 참석하지 않는다.
이전에 비하면 정관계 인사들 참석도 줄었다. 정부 대표로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하고,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세션발표를 맡은 정도다. 이전에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거나 대통령 특사로 친박 측근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보냈던 것과 대비된다.
탄핵정국에서 대통령은 물론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참석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역시 해외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불참하게 됐다.
다보스포럼에 국내 기업인들의 참석이 줄어든 건 최근 혼란스러운 국내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다보스포럼 자체의 매력이 줄어든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경제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들의 모임이라기보다 단순히 부자들의 친목모임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1인당 최소 5만 달러나 되는 참가비를 납부하고 포럼에 참석하는데 곱지 못한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다보스포럼 참석은 글로벌 네트워크 형성과 홍보 목적이 대부분”이라면서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떠들석하게 포럼에 참석하기는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 편”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다보스포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는 “다보스포럼은 진부하다”며 “회의 첫날 포럼 주제를 망각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최근 주요국가에서 반세계화·보호무역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뚜렷한데 이는 다보스포럼이 수십년 동안 확산시킨 세계화-자유시장주의 기조의 정반대에 있다. 이 때문에 다보스포럼의 역할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영국 BBC방송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집권, 포퓰리즘 바람은 올해 47회를 맞은 다보스포럼 실패의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취임을 앞두고 있는데 다보스포럼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보호무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보스포럼을 외면하며 다보스포럼이 더욱 힘이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기드온 래크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는 16일 “다보스포럼의 세계관이 유례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며 “정치적 격변이 다보스포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다보스포럼에서 변화의 조짐도 감지된다. 다보스포럼은 주로 세계화와 성장을 주제로 열렸는데 이번에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세계적으로 대두되는 포퓰리즘에 대응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할 포용적 성장을 논의하겠다는 생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도 주목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빠진 빈자리를 시 주석이 채우는 모양새다.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반세계화와 국제공조 붕괴에 직면한 상황에서 중국이 책임감 있는 리더 국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