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포도 작황 악화, 글로벌 와인업자들 '블렌딩 와인'으로 눈 돌려

▲ 기후변화로 포도 작황이 악화되면서 여러 지역, 여러 해에 걸쳐 생산된 와인을 섞어 만드는 '블렌딩 와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 <위키미디아 커먼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로 전 세계적으로 포도 작황이 악화하면서 세계 와인업자들이 생산 방식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4일(현지시각) BBC는 와인업자들이 기존에는 저급 와인으로 인식되던 '블렌딩 와인' 생산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렌딩 와인이란 여러 지역, 여러 해에 걸쳐 생산된 와인들을 섞어 제조한 와인을 말한다.

와인 업계에서는 통상적으로 특정 해의 단일 경작지에서 생산된 포도만으로 만든 '빈티지 와인'을 생산한다. 와인 맛의 일관성을 보장하고 높은 품질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글로벌 포도 작황이 전반적으로 악화하면서 생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블렌딩 방식을 사용하는 와이너리들이 늘고 있다.

크리스 하웰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 '케인 빈야드 앤 와이너리' 와인메이커는 BBC 인터뷰에서 "날씨는 우리에게 매우 복합한 문제"라며 "나파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여름 내내 찾아오는 극심한 폭염"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높아지면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실제로 2017년 나파밸리 일대에서는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포도 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 나파밸리의 와이너리들은 부족한 생산량을 보충하기 위해 이전 해에 나온 물량을 블렌딩해 와인을 생산했다.

하웰 와인메이커는 "우리는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이와 같은 재앙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편"이라며 "이제는 그런 화재가 없어도 우리는 기존의 방식에만 집중하지 않고 여러 빈티지 와인들을 섞어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고 우박이 더 자주 내리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여러 와이너리들이 빈티지 방식에서 블렌딩 방식으로 옮겨가는 업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 이탈리아 와인업자는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여러 와이너리가 빈티지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며 "이탈리아의 극심한 기상 현상은 이제 새로운 일상이 돼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와인업자들은 블렌딩 와인 생산량이 불가피하게 계속 늘고 있는 만큼 블렌딩 와인이 싸구려라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웰 와인메이커는 "이제는 와인 애호가들도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며 "빈티지 와인이 아닌 와인도 충분히 맛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BBC가 인터뷰한 와인 전문가도 이같은 와인업계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했다.

던 데이비스 와인 마스터는 BBC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은 블렌딩 와인과 빈티지 와인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이미 많은 업자들이 여러 배럴에서 숙성된 와인들을 섞는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여러 해에 걸쳐 생산된 것들을 섞는다 해서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