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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프레젠테이션 자료 만들기에 사용되는 파워포인트(PPT) 사용을 금지했다.
정 사장은 디자인 경영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왜 이런 지시를 내렸을까?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작성하면서 디자인에 신경쓰면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7월 한 달 동안 본부별로 돌아가며 파워포인트(PPT)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 '제로(ZERO) PPT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회의를 비롯한 모든 업무에서 PPT작업이 금지됐다. 대신 직원들은 이메일이나 워드, 엑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텍스트 중심으로 업무보고 자료를 만들고 있다.
정태영 사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본부별로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한 달 동안 파워포인트 사용금지 기간을 설정했다”며 “전화나 이메일로 간단히 알리면 될 일도 PPT를 써야 멋있거나 정중한 것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기업문화팀의 결정에 나도 대찬성”이라고 했다.
이번 조치는 PPT작업에 과도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내부반성에 따라 시행됐다. PPT로 보고할 경우 멋있게 보이기 위해 폰트, 이미지, 도표 등 부수적 항목에 관심을 쏟다보니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보내는 CEO메시지를 통해 “일단 PPT를 열면 디자인적 요소를 생각 안 할 수 없다”며 “우리 내부에서만 유통되는 보고서에 이런 디자인적 요소로 에너지가 낭비되는 일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 사장의 메시지는 ‘PPT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업무본질에 충실하자는 취지다.
현대카드는 그동안 금융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디자인을 강조해 온 회사다. 현대카드는 정 사장의 지휘에 따라 금융회사로서 이례적으로 자체 디자인 연구실을 만들어 카드와 광고, 서비스, 업무 전반에 걸쳐 디자인 기법을 도입해 왔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디자인 때문에 에너지가 낭비된다”는 정 사장의 발언은 뜻밖이다.
그러나 정 사장은 평소 디자인을 강조하는 만큼 ‘단순화’도 중시했다. 그의 단순화 전략은 이미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심플’을 모토로 카드혜택을 포인트와 캐시백 두 가지로 단순화한 ‘챕터2’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현대카드는 PPT 사용금지 캠페인이 끝난 후에도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PPT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정 사장은 “직원들이 실제 업무에 대한 고민보다 PPT를 예쁘게 디자인하는 일에 시간을 과도하게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을 듣고 매우 놀랐다”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사업의 본질적 고민보다 보고서 작성에 투입되고 있는지 상상만 해도 괴롭다”는 뜻을 밝혔다.
PPT 사용은 이미 다른 기업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 역시 PPT의 현란한 그래픽 때문에 비본질적인 것에 주의를 빼앗기는 현상을 경계했다. 그는 2012년 전 직원에게 보고서 작성 때 PPT를 쓰지말고 6장 짜리 문서로 사안을 명확히 설명할 것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