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DB하이텍의 브랜드사업부문(팹리스, 반도체설계)을 물적분할하는 안건이 어렵사리 주주총회 문턱을 넘겼다
새로 출범하는 DB팹리스(가칭)의 수장을 맡게 되는 황규철 사장은 회사를 '제 2의 미디어텍'으로 키운다는 포부를 펼칠 기회를 잡게 됐다.
▲ 새로 출범하는 DB팹리스(가칭)의 수장을 맡게 되는 황규철 사장(사진)은 팹리스 사업을 제 2의 미디어텍으로 키운다는 포부를 펼칠 기회를 잡게 됐다. |
29일 DB하이텍에 따르면 이날 열린 DB하이텍 정기 주주총회에서 브랜드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는 안건이 최종 승인돼 팹리스사업의 전문화와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DB하이텍의 브랜드사업부문은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설계 분야에서 팹리스사업을 진행해 왔다. 다만 LCD용 디스플레이구동칩 등 저부가가치 범용 품목 위주의 사업을 하는 탓에 다른 팹리스와 비교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DB하이텍의 주력사업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라는 점은 브랜드사업부문이 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며 제품군을 넓히는 데 제약이 된 배경으로 꼽힌다.
DB하이텍 파운드리사업부문에 생산을 맡기는 팹리스 업체들로서는 DB하이텍의 브랜드사업부문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팹리스 업체들이 DB하이텍 파운드리사업부문에 생산을 맡기는 과정에서 설계도면 등에 담긴 기밀들이 브랜드사업부문으로 유출될 염려를 하는 것이다.
DB하이텍도 고객사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업의 구조를 봤을 때 두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 성장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물적분할 불가피론을 거듭 강조해왔다.
DB하이텍이 물적분할 추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물적분할을 시도했지만 기업가치 저하를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무산된 적이 있다.
소액주주들이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배경에는 물적분할을 통해 신설된 자회사를 주식시장에 상장하게 되면 기존 모회사 주식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 때문에 DB하이텍은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는 등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마련하는 한편 자회사를 상장할 계획이 없다는 점을 거듭 천명하며 주주들을 설득하는 데 힘을 쏟았다.
비록 이번에도 일부 주주들이 조직적으로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주주 다수는 회사 측의 손을 들어주며 물적분할 안건이 결국 통과됐다. DB하이텍으로서는 재수 끝에 팹리스 분사에 성공한 셈이다.
DB하이텍이 지난해 외부 인재인 황규철 사장을 영입한 것도 물적분할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행보로 볼 수 있다. 당시 DB하이텍은 황 사장 영입과 함께 브랜드사업본부장 직급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한 단계 격상했다
황 사장은 1990년 삼성전자에 들어가 30년 넘게 시스템LSI사업부에서 일했다. 디스플레이구동칩 제품개발팀장, 상품기획그룹장, 영업팀장, 전략마케팅팀장 등을 거치며 다방면에서 경험을 축적한 팹리스 분야 실력자로 꼽힌다.
하지만 지난해 물적분할이 무산된 탓에 황 사장이 팹리스 사업 전문화·고도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는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황 사장으로서는 물적분할 확정으로 진짜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게 된 셈이다.
황 사장은 앞서 언론 배포자료를 통해 “모회사 DB하이텍과 시너지를 높여 ‘제2의 미디어텍’으로 키워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미디어텍은 대만의 대표적 팹리스기업으로 미국 퀄컴의 뒤를 잇는 글로벌 2위 모바일프로세서(AP) 설계 기업으로 평가된다. 미디어텍은 대만 반도체기업 UMC에서 분사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UMC는 세계3위 파운드리 회사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 분석을 종합하면 미디어텍은 글로벌 전체 팹리스 가운데서도 5위 안팎의 지위를 차지하는 곳이다. 다만 한국기업으로 20위 권 안에 드는 곳은 LX세미콘이 유일하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 위상을 지니면서도 미약한 팹리스 경쟁력이 약점으로 지목돼 왔다. 한국의 팹리스 경쟁력은 미국과 대만은 물론 중국에도 크게 뒤처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팹리스 기업들이 대체로 규모가 작은 곳들이 많다는 점은 미국, 대만 등과 비교해 팹리스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자금력이 부족하다보니 고급인력 확보나 지식재산 확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DB하이텍은 상당한 규모를 갖춘 데다 반도체 업력이 길다는 점에서 팹리스 사업을 키우는 데도 더 적합할 수 있다. 2022년 말 기준으로 DB하이텍이 보유한 유동자산은 1조3천억 원이 넘는다.
DB하이텍은 파운드리와 팹리스 기업가치를 각각 4조 원과 2조 원으로 높여 기업가치 6조 원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분할 전 DB하이텍의 시가총액은 약 2조7천억 원 수준이다.
DB하이텍 관계자는 “고객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파운드리와 팹리스 사업을 분리해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한 동반성장을 꾀하려 한다”며 “분할 뒤 각 사업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해 기업가치를 높여가면 주주가치도 함께 상승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