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진주시 이현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야생 팥과 콩 등 한반도 토종 두류를 복원해 만든 '두 고개 팥 메주'를 출시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진은 올해 만들어진 벽돌형 메주와 도넛형 메주. <이현동 주민자치위원회>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 속담에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는다는 얘기가 있다. 지나치게 남을 믿는다는 뜻이다.
원래 메주는 콩으로 쑨다. 팥으로는 못 쑨다. 전분과 수분이 많아 발효 전에 상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팥으로 쑨 메주가 나왔다. 그 과정에서 야생 팥과 콩 등 한반도 토종 두류도 되살려냈다. 종자 복원은 기후변화 시대에 기후 스트레스 강한 작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경남 진주시 이현동 주민자치위원회는 팥과 콩을 혼합해 제조한 '두 고개 팥 메주'를 출시했다고 30일 밝혔다.
'두 고개 팥 메주'는 이현동 한 주민의 집에서 몇십 년 동안 보관돼 있던 야생 팥 종자와 고전 문헌에 나와 있는 '소두장법(小豆醬法)' 레시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지난해 5월 야생 두류 20여 종을 파종했다. 그 가운데 잘 자란 팥 종자 2개와 콩 종자 2개를 올해 다시 뿌려 10월에 모두 400㎏을 거두었다.
주민자치회는 이렇게 키운 팥과 콩을 '소두장법' 즉 팥으로 장을 담그는 전통기법으로 발효시켜 벽돌형 메주, 도너츠형 메주 두 가지 형태로 개발했다. 도너츠형 메주는 발효 기간이 짧아 장 담그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강점도 있었다.
이렇게 담근 메주로 된장을 만든 결과, 시식자들은 콩으로만 만든 메주 제품에 비해 맛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고 주민자치회는 전했다.
이 사업은 올해 경남 주민자치박람회에서 최우수 주민자치 사례로 선정됐다.
이현동 주민들은 진주시 주민자치 우수사례 발표에 나가 자신들이 복원한 종자와 두부를 나눠주며 토종 종자의 중요성을 홍보하기도 했다.
▲ 이현동 주민자치위원회 주민들이 팥 메주를 만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넷째가 류덕희 이현동장.<이현동 주민자치위원회> |
이 사업은 2021년 ‘지역사회 문제해결 생활 실험 사업’으로 시작됐다. 이상기후에 대비해 지역의 농업자원을 개발하고 새로운 농업소득 상품을 발굴하자는 취지였다.
과거 어렵게 살던 시절의 추억이 계기가 됐다. 주민 몇몇이 어렵던 시절 산과 들에서 따먹었던 야생 두류를 떠올렸고 한 주민이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종자들을 내놨다.
이어 이것을 농업자원으로 활용해 소득을 올려보자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류덕희 진주시 이현동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기후변화로 수입 작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이상 기후에 대비한 작물을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상 기온이 심화된다면 콩으로 만든 메주가 맛이 달라지거나 양이 줄어들 것으로 봤다.
작물 다양성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데에 주민들 의견이 모였다.
콩으로 만든 메주는 온난화로 작황에 문제가 생기면 양이 크게 줄어들거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메주 재료가 다양해지면 작황 걱정이 줄어든다.
보리 등 다양한 작물이 제시됐지만 최종적으로 팥이 선택됐다. 다른 작물에 비해 장점이 많았다.
류 동장은 "팥은 일반적으로 콩 보다 재배가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팥으로 메주를 만들면 메주 제형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장점이 있다"며 "콩으로 쑨 메주보다 맛이 더 좋아진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회는 새해부터 지역의 두류 자원을 향후 농업 자원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팥 메주, 팥 된장, 팥장 등을 지역 농민들의 소득사업으로 하기 위해 마을기업을 설립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소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