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KEB하나은행이 3일 자체적으로 개발한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 '사이버 프라이빗뱅킹'(PB)을 출시한 가운데 은행 관계자가 고객에게 태블릿PC를 통해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
금융권에 인공지능이 밀려들고 있다.
인공지능에 자산관리를 맡긴 '로보 어드바이저'는 최근 3개월 동안 인간 펀드매니저에 밀리지 않는 투자수익률을 거뒀다.
인공지능의 활동범위도 주식거래와 대출심사 등 금융권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금융시장에서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
◆ 인공지능이 내 자산을 관리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회사들이 최근 로보 어드바이저를 접목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거 출시하고 있다.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현대증권, 동부증권 등이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KDB대우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올해 상반기 안에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을 세웠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로봇을 가리키는 ‘로보’와 조언자를 뜻하는 ‘어드바이저’의 합성어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고객의 투자성향과 시장상황을 분석해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을 자문하고 투자를 집행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인건비를 들이지 않아 비교적 적은 자금을 보유한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 연간 자산관리 수수료율도 0.25~0.5%로 기존 투자자문사의 절반에 불과하다.
KEB하나은행은 로보 어드바이저의 자산관리 최저한도로 50만 원을 책정했다. 다른 곳들도 수백만 원대부터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5천만 원 이상을 맡긴 고객을 대상으로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했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수익률도 양호한 편이다. 로보 어드바이저 전문 투자자문사인 쿼터백투자자문에 따르면 이 회사의 로보 어드바이저 일임상품은 올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평균 투자수익률 2% 후반을 냈다.
이 기간에 펀드매니저가 운용한 국내 액티브주식형펀드 1044개는 평균 투자수익률 -2.39%에 머물렀다. 인공지능이 인간 펀드매니저보다 약 5%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낸 셈이다.
로보 어드바이저의 높은 수익률은 빅데이터를 통한 학습능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전 세계 증시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짠다. ‘알파고’처럼 훈련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머신러닝’ 기술도 사용하고 있다.
양신형 쿼터백투자자문 대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글로벌 주식연계증권(ETF) 2500개가 투자한 기초자산 30만 개를 분석해 데이터 920조 개를 뽑았다”며 “이 데이터를 근거로 위험신호를 사람보다 빨리 판단하는 로보 어드바이저 시스템을 구축해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 금융서비스 전역에 부는 변화의 바람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가장 먼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는 인공지능 관련 서비스로 금융을 꼽았다. 인공지능이 지금도 다양한 금융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증권사들은 이전부터 인공지능의 요소를 적용한 ‘알고리즘 매매’로 주식을 거래해 왔다. 알고리즘 매매는 일정한 논리구조(알고리즘)에 맞춰 컴퓨터로 주식을 자동으로 사고파는 방식이다. 알고리즘은 주식 가격, 거래량, 경제지표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성된다.
|
|
|
▲ P2P대출 중개회사들은 대출신용평가에 인공지능을 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알고리즘 매매는 최근 단순한 주식거래뿐 아니라 날씨와 SNS 등 세부적인 요소까지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글로벌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물론이고 헤지펀드들도 IT전문 인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도 장기적으로 인공지능의 주식거래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대표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컴퓨터가 가치주를 발견하고 탐방할 기업을 발견하고 있다”며 “인공지능의 연산추리능력을 인간이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대개인(P2P)대출 중개회사들은 대출심사에도 향후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개인투자자의 돈을 모아 대출 희망자에게 빌려줄 때 인공지능에게 평가를 맡기는 방식이다.
국내 P2P대출 중개회사인 어니스트펀드의 서상훈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대출신용평가에 본격 적용된다면 대출 여부는 물론 대출 상한액과 금리 결정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에는 컴퓨터가 인공지능에 기반해 여신 심사과정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의 일부 금융기관은 인공지능의 고객 응대를 시험하고 있다.
일본 미즈호은행은 도쿄의 일부 지점에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을 고객 응대업무에 쓰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페퍼’의 감정인식 기능을 이용해 고객의 말과 표정을 분석해 대응하는 방식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스털링뱅크앤트러스트도 고객 응대용 로봇을 도입했다.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은 자금이체 업무에 로봇을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들은 인공지능 로봇 은행원을 이용해 단순업무의 오류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로봇 기술을 활용한 수익성과 서비스의 품질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인공지능의 한계는 어디일까
컴퓨터공학자 출신으로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영입된 브래드 베츠는 “어떠한 인공지능의 알고리즘도 인간처럼 창의적이지 못하다”며 “위기상황에서 특히 이런 단점이 부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무라금융그룹과 크레디스위스은행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개발한 일본은행(BOJ)의 통화정책 예측 프로그램은 금융시장의 위기상황에 맞닥뜨린 인공지능의 약점을 보여준 사례다.
|
|
|
▲ 인공지능은 금융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에서 아직 인간을 따라잡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이 프로그램은 일본은행에서 지난해 10월 실시한 추가 양적완화정책을 예상해 화제에 올랐다. 당시 블룸버그통신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가 완화정책 시행을 예측한 전문가는 전체 응답자의 9.4%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1월에 틀린 결과를 내놓았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일본은행의 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부양정책을 결정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1월에 마이너스 금리를 전격 도입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1월에 급격하게 확대된 금융시장의 불안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것”이라며 “인공지능을 접목한 예측 프로그램은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전망을 내놓는 데 아직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이 오류를 일으켰을 때 금융시장에 더욱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알고리즘 매매에서 일어난 오류로 주식시장이 뒤흔들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사인 나이트캐피탈은 알고리즘 매매를 통한 초단타매매 전문사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이 회사는 2012년 8월 프로그램 오류로 45분 만에 4억4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나이트캐피탈은 파산 위기에 몰린 끝에 경쟁사 겟코에 인수됐다.
국내에서는 한맥투자증권이 2013년 12월에 알고리즘 매매로 선물옵션을 주문하다가 2분 동안 460억 원의 손실을 내고 결국 파산했다. 금융권에서는 한맥투자증권의 자동매매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켰을 것으로 파악한다.
인공지능 ‘왓슨’을 금융서비스에 제공하고 있는 IBM은 “왓슨은 어디까지나 ‘잘 배우는 기계’로서 인간의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며 “서로의 강점을 이끌어내는 쪽이 더욱 생산적이고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