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재편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원샷법이 통과되면서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도 이전보다 더욱 쉬워졌다. 일부 대기업집단은 원샷법을 통해 경영권 승계를 꾀할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현대차그룹, 장기적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5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그룹이 원샷법 통과를 계기로 지주회사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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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위아, 현대파워텍, 현대오토에버 등의 모회사다.
원샷법은 지주회사의 증손회사에 대한 보유 지분율을 기존 100%에서 50%로 낮췄다. 이 때문에 지배구조 하단에 하위 계열사가 많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더욱 쉬워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법 아래서는 현대모비스가 지주회사로 올라서면 기아자동차 자회사의 지분 100%를 모두 사들여야 한다”며 “원샷법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삼각주식교환(역삼각합병)’을 이용해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삼각합병은 올해 3월부터 적용되는 상법 개정안에 포함됐는데 원샷법과 맥락을 같이 한다.
역삼각합병은 모회사가 자회사를 통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인수되는 기업을 존속법인으로 둘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존속법인으로 남은 회사의 주주는 보유한 지분가액만큼 모회사의 지분을 받게 된다.
정의선 부회장은 순환출자 구조에 포함된 계열사들 가운데 현대자동차 지분 1.44%와 기아자동차 지분 1.74%만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려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면서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증권업계에서는 현대모비스가 물적 분할해 특정 사업부를 100% 자회사로 만든 뒤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를 보유하고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가 일대일로 합병하면 정 부회장의 지분율 하락이 크고 주주총회 통과도 불투명하다”며 “역삼각합병을 통해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지분가액만큼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부회장은 비상장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 지분 11.72%와 현대오토에버 지분 19.46%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들도 현대자동차나 현대모비스에서 물적 분할된 자회사와 합병할 수 있다. 이 경우 정 부회장은 보유한 지분가액만큼 현대자동차나 현대모비스 지분을 얻게 된다.
◆ 한화그룹,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권 승계 수혜 전망
한화그룹은 원샷법 통과로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점쳐진다.
원샷법은 공급이 과잉된 부문에 적용된다. 한화그룹은 화학(한화케미칼, 한화종합화학, 한화토탈)과 건설(한화건설) 등에서 원샷법을 통해 사업을 재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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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
윤태호 연구원은 “원샷법은 과잉 공급 업종의 합병, 분할, 자산 양수도를 더욱 쉽게 만들기 때문에 건설, 화학, 중공업 자회사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통해 모회사의 가치가 개선된다”며 “자회사 한화건설의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됐던 한화 등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그룹이 원샷법 통과를 계기로 지주회사 전환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화그룹은 현재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한 한화를 통해 지주회사와 비슷한 지배구조를 갖췄지만 지주회사 체제로 아직 바뀌지 않았다.
한화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원샷법에 따라 부채비율 유예 기간을 3년으로 늘릴 수 있다.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회사에 대한 출자 규제도 완화되고 공동출자도 할 수 있다. 소규모 합병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을 손쉽게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화S&C에 역삼각합병을 활용해 3세 경영을 준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화S&C 지분은 현재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50%,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전사혁신실 부실장이 25%, 삼남인 김동선 한화건설 과장이 2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화가 특정 사업부문을 100% 물적 분할해 자회사로 만든 뒤 한화S&C와 합병하면 김 회장의 아들들이 지주사 격인 한화의 지분을 받게 된다. 한화S&C가 상장해 몸집을 불린 뒤 한화와 소규모 합병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 낸다
롯데그룹은 원샷법 통과로 현재 진행 중인 지배구조 개편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은 현재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대홍기획, 롯데제과 등을 통해 80여 개의 한국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전체 순환출자 고리 수도 67개로 대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많다.
롯데그룹은 주요 계열사들을 상장하면서 장기적으로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방침을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원샷법이 통과되면서 롯데그룹도 지주회사 전환과 계열사 구조 개편에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지주회사로 만들거나 롯데제과와 합병해 지주회사로 전환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 쪽이든 롯데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롯데제과와 롯데쇼핑에서 공동으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지주회사는 원칙적으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지배구조만 허용된다. 지주회사의 여러 자회사가 특정 손자회사의 지분을 나눠서 보유하는 것은 금지된다.
윤태호 연구원은 “원샷법이 통과돼 지주회사의 여러 자회사가 공동출자로 손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어 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다”며 “계열사 간 지분관계가 복잡하고 자회사의 현금동원력도 부족한 롯데그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진단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