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검찰
’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한해 동안 법원 판결 때문에 어지간히 체면을 구겼다
.
공정위와 기업집단 사이에서 벌어진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공정위는 60%를 넘는 승소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과징금만 따지면 87%에 달하는 금액이 법원 판결로 취소된 것으로 나타나 승소율은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했다는 분석이다.
◆ 공정위 vs 대규모 기업집단
|
|
|
▲ 노대래 공정위 위원장 |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 경쟁 촉진
, 소비자주권 확립
, 중소기업 경쟁 기반 확보
, 경제력 집중 억제 등을 맡고 있는 기관이다
. 한마디로 기업 사이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는 곳이다
.
공정거래법의 집행 권한과 준사법권, 준입법권을 갖춘 독립규제위원회로 기업을 상대로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흔히 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어겼을 때 과징금 등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경제 검찰로 불린다.
그러나 공정위가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다. 기업들은 공정위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여길 때, 즉 과징금 부과 처분 등에 불복할 때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행정소송은 국가기관의 행정 처분을 법원에서 정식으로 다투는 소송절차로 흔히 행정법원이 재판을 맡는다.
1심 판결에 불복할 경우 고등법원에 항소하거나 이어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다만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취소 소송은 고등법원과 대법원을 거치는 2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등에 따르면 국내 기업집단 계열사 가운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처분을 받은 후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심 판결을 선고받은 곳은 모두 21곳으로 집계됐다.
법원은 14개 업체와 소송에서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승소율이 60% 후반대에 달했고, 한발 나아가 중소기업이나 개인과 소송 결과까지 합치면 승소율이 80%를 웃돈다.
공정위는 지난 30년 동안 4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이가운데 3조원 이상이 2005년 이후에 부과된 액수다. 지난 7~8년 동안 과징금이 크게 늘어남과 동시에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도 함께 증가했다.
◆ 승소율, 알고보니 ‘빛좋은 개살구’
하지만 공정위가 달성한 승소율에 비해 승소하면서 기록한 과징금 액수를 지켜보면 공정위의 낯빛은 어두워진다. 승소하면서 남긴 금액은 당초 과징금의 1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21개 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모두 3131억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7개 업체에 부과한 2721억원의 과징금이 취소됐다. 86.9%의 과징금이 날아간 셈이다.
특히 유통 과정에서 담합이 이뤄졌다는 혐의로 정유업체에 부과한 공정위의 과징금이 대거 재판을 통해 취소됐다. 날아간 과징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법원은 SK그룹 정유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 등에 대한 1356억원, 현대중공업 계열 정유업체 현대오일뱅크에 대한 754억원의 과징금을 각각 전액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이와 함께 공정위가 예정이율 인하 합의를 적발해 보험업체에 부과한 과징금도 수백억원 취소했다. 취소된 금액은 한화생명 486억원, 흥국생명 43억원, 미래에셋생명 21억원 등의 순서다. 예정이율이란 보험업체가 고객에게서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보험금 지급 때까지 거둘 수 있는 예상수익률을 의미한다.
이들 과징금 취소 소송의 결과가 확정되면 업체들은 이미 납부한 과징금 상당액에 이자(연이율 0.042%)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공정위의 무리한 처분으로 또다른 세금이 쓰여지는 결과를 보이는 셈이다.
◆ 무리한 처분이냐, 대형 로펌의 활약이냐
정유업체들이 제기한 과징금 처분 취소 소송은 이른바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광장, 법무법인 태평양이 법률대리인을 맡았다. 공정위와 보험업체 사이의 소송은 역시 대형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율촌 등이 기업의 소송을 대리했다. 대형 로펌의 활약이 두드러져 과징금 처분 취소 판결을 이끌어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업체들이 대형 로펌을 동원해 유리한 결과를 얻어냈다는 분석과 함께 공정위가 무리한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가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다소 무책임하게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