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페라가모 매장 전경 |
수입 명품의 대명사 페라가모가 한국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퇴출되는 수모도 겪었다.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소비 성향이 양극단으로 바뀌면서 어중간한 가격에 대중적 명품으로 자리매김한 페라가모가 고전하고 있다.
페라가모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7억 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44.3%나 떨어졌다. 2011년 영업이익이 210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 만에 반토막난 셈이다.
페라가모 위상도 바닥을 치고 있다. 백화점에 지불하는 판매수수료가 판매액의 20%를 넘어섰다. 입점 업체가 판매금액의 일정 부분을 백화점에 내는 판매수수료율은 그 업체의 위상을 보여주는 척도다. 백화점들은 인기 명품 업체에게 낮은 수수료율을 제시해 입점을 유도한다. 보통 명품업체의 위상이 높고 매출 실적이 좋을수록 수수료율이 낮다.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 해외 명품업체의 평균 수수료율은 17.8%이다. 보통 수수료 20%을 넘어서면 업계에서 명품이 아니라 준명품으로 분류한다.
페라가모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웨스트에서 입점 9년 만에 사실상 퇴출되는 일도 겪었다. 백화점이 매장을 재단장하는 과정에서 페라가모에 매장의 층수 변경을 요구했다. 그러자 페라가모는 불쾌함을 드러내며 매장을 아예 철수했다. 한때 5대 명품 브랜드로 불리던 페라가모가 서울의 주요 백화점에서 밀려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라가모의 추락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더욱 비싸고 희소성 있는 명품을 찾는 반면, 그동안 돈을 모아 명품을 샀던 중산층은 장기불황으로 명품 소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위 부유층이 찾는 에르메스나 샤넬 등 초고가 명품업체는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않아 경기침체 때도 매출에 타격을 받지 않는다. 반면 중산층 고객 비중이 큰 페라가모는 중산층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게다가 페라가모는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다는 점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병행수입이 활발해지면서 명품 구매처가 다양해졌고 온라인을 통한 직접 구매도 늘어났다. 이렇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자연히 브랜드 가치는 점점 떨어졌다. 결국 누구나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겨 ‘명품’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우량 고객층이 이탈했다.
페라가모가 유행과 디자인에 민감한 우리나라 소비자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화점 업계는 예전처럼 브랜드의 로고만 보고 무작정 구매하는 충성고객층이 거의 사라졌다고 본다.
명품 소비의 폭이 잡화류에서 시계나 보석 등으로 확대된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또 기존 유명 명품 브랜드가 아닌 해외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신생 브랜드로 소비자들이 눈을 돌리는 것도 페라가모의 수익 악화에 한몫했다.
페라가모의 가격인상 정책도 소비자들을 돌아서게 했다는 분석이다. 페라가모는 4개월 전 한차례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지난달 말에 일부 제품의 가격을 또 인상했다. 4개월 만에 별다른 이유 없이 가격이 2번이나 올라간 제품도 있었다.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리는 국내 명품 시장의 특성을 이용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페라가모코리아는 1997년 홍콩의 글로벌기업인 리앤펑과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세워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리앤펑이 지분을 뺐다. 이어 1996년부터 18년 동안 페라가모코리아 지사장을 맡았던 최완 대표도 지난해 말 실적 악화를 이유로 경질됐다.
그뒤 페라가모코리아는 김한준 전 MCM 내수총괄 본부장이 이끌고 있다. 페라가모의 새 얼굴이 된 김 대표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버버리코리아 지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명품시장이 어렵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역량을 펼쳐 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