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뒤엎은 결과에 주주들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적과 상관없이 보수를 늘리는 여느 기업들과 달리, 보수 절제 기조를 통해 주주환원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19일 에이피알의 실적을 종합해보면 상장 이후 외형과 수익성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매 분기 실적을 경신하며 올해는 ‘1조 클럽’ 가입이 유력시되고 있다.
에이피알은 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상장 1년 반 만에 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에이피알은 올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5938억 원, 영업이익 1391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95.1%, 영업이익은 149.3% 증가했다.
주가도 실적과 비례해 치솟고 있다.
액면분할 첫날인 지난해 10월31일 5만3900원이던 주가는 불과 10개월도 안 된 올해 8월18일 21만500원으로 3배 넘게 뛰었다. 물론 최대주주인 김 대표의 지분가치 상승이 가장 크지만, 주주들 입장에서도 만족스러운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김병훈 대표의 보수 흐름은 사뭇 다르다. 올해 상반기 급여만 수령했을 뿐 성과급 성격의 상여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올 상반기 상여가 지난해 하반기 실적에 연동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에이피알은 지난해 하반기 매출 4184억 원, 영업이익 669억 원을 기록했다. 2023년 하반기와 비교해 매출은 52.8%, 영업이익은 19.0% 증가하며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에이피알의 보수 체계를 살펴보면 의문은 더욱 커진다.
에이피알은 각 반기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업무 기여도와 성과를 반영해 상여금을 연 2회 지급한다. 지급 규모는 핵심인재등급과 조직 기여 비중을 적용해 산정한다.
실제 에이피알의 전무이사와 부장들도 올해 상반기 상여를 받았다. 기업의 핵심 인재로 분류되는 김 대표의 상여가 더 높게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상여뿐 아니라 총보수 자체도 줄었다. 김 대표는 올해 상반기 보수로 10억 원을 수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1% 감소했다.
업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가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실제 시총 2위로 밀려난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은 아모레퍼시픽홀딩스와 아모레퍼시픽에서 총 51억1600만 원을 받았다.
시총 3위로 내려앉은 LG생활건강의 이정애 사장 역시 부진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9억4800만 원을 수령했다.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임에도 김 대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행보를 놓고 주주환원에 대한 신뢰도를 놓이고 있다고 평가한다.

▲ 에이피알의 주가가 배당 정책 및 실적 성장에 힘입어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에이피알>
실적 부진에도 고액 보수를 챙기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주식 가치를 통해 주주 수익을 책임을 지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반면 주요 유통 대기업들은 실적과 무관하게 오너일가의 보수 인상과 상여 지급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실적과 보수의 불연동은 주주 신뢰를 떨어뜨리고 경영 투명성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에이피알 내부에서 성과에 걸맞은 보상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장 이전 근무자들에게는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이 부여됐다. 단기적 성과급 대신 주식 기반 보상의 비중을 높이면서, 중장기적 기업가치 제고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정재훈 전무이사가 스톡옵션 행사로 168억2천만 원을 수령했고, 이민경 전무이사도 166억77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강민준 전 부장과 남지은 부장 역시 각각 9억8천만 원을 확보했다.
에이피알은 주주환원 정책에서도 적극적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에이피알은 지난해 7월 3개년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매년 연결기준 순이익의 25% 이상을 자사주 매입·소각과 현금배당에 활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발표 이후 실행 속도도 빨랐다. 지난해 6월 600억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시작으로 올해 300억 원어치를 추가로 매입·소각했다. 지난 7월에는 1343억 원 규모의 현금배당도 결정했다. 불과 1년 만에 누적 주주환원 규모가 220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에이피알의 주주환원율은 55.7%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주주환원율은 순이익 대비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금액의 비율을 의미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밸류업 계획을 발표한 상장사 53곳의 평균 목표 주주환원율은 39.2%에 그쳤다.
다만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행보를 두고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미 배당으로 수백억 원을 확보한 상황에서 상여의 의미는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에이피알이 지난 7월 결정한 1343억 원의 현금배당 가운데 최대주주인 김병훈 대표의 몫은 435억 원에 이른다. 이를 고려하면 업계 시총 1위 기업의 오너로서 충분한 규모라는 주장이다.
에이피알 관계자는 “지난해 3개년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고 주주가치 제고 및 기업 밸류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발표한 계획에 따라 자사주 매입 및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