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전기요금 인상’ 시사에 긴장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특히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정책 성공을 위해선 중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 직접구매제도’(PPA)를 활용하거나, 자체 발전 시설을 구축하는 방식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19일 산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4일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면서 기업들이 전력 조달 비용의 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0월 마지막으로 인상된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1분기 1kWh당 105.5원에서 2024년 4분기 185.5원으로 75.8%(80원)이 올랐다. 반면 일반용 전기요금은 128.5원에서 168.9원으로 40.4원(31.4%) 오르는 데 그쳤다.
재계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기업의 생산·투자활동 위축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전력생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3년 8.4%에서 2038년 29.2%로 높인다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라 산업용 전기요금은 중장기적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전력의 재무 상황이 심각한 것도 전기요금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전의 올해 상반기 말 연결기준 총부채는 206조2천억 원에 이른다.
전기요금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곳은 국내 전력 사용량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반도체를 제조하는 공간은 정밀한 온도 제어가 필수적인 만큼 냉난방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간다. 노광장비, 이온 주입기, 식각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장비의 전기 소모량도 상당하다.
삼성전자가 2024년에 사용한 전력량은 3만2084기가와트시(GWh)에 달한다. 2023년 대비 7% 증가한 것으로, 국내 사업장에서 한국전력에 지급한 전기요금만 4조 원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2024년 1조 원 이상의 전기요금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 삼성전자 경기도 평택 소재 반도체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2025년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회사의 전기·가스 등 유틸리티 비용(연결기준)은 4조422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약 10% 증가했다. SK하이닉스의 동력 및 수도광열비도 1조492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 가량 늘었다.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전기요금 인상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먼지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불량품이 되기 때문에 제조 공장 전체가 ‘클린룸’으로 운영된다. 게다가 패널을 굽거나, 유기물을 증착하는 과정은 매우 높은 온도가 필요해, 전력 소비가 매우 크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국내에서 4~5번째로 많은 전기를 구매하고 있다.
가파른 전기요금 상승에 일부 기업들은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전력 직접구매제도’ 활용을 통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력 직접구매는 특정 발전사업자가 아닌,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력을 구매하는 제도다. 한국전력의 소매 요금 체계가 아닌, 전력 도매시장 가격(SMP)을 기준으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 한전의 소매요금은 185.5원/kWh인 반면, 전력 직접구매 가격은 150원/kWh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사업장 전경. < SK하이닉스 >
삼성전기, SK인천석유화학, SK어드밴스드 등 11곳도 최근 전력직구제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와 같은 기업들의 ‘탈한전’ 흐름은 점차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3월 발표한 조사에서는 국내 제조업체 10곳 가운데 4곳(39.4%)이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체 발전 시설을 가동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기업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사업장과 경기 이천사업장에서 각각 585메가와트(MW)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가동하며 일부 전력을 자체 수급하고 있다.
2027년 5월 준공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도 별도의 자체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은 시기 문제일 가능성이 큰 만큼, 기업들은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정혜영 KB증권 연구원은 “최근 에너지 고속도로 등 국내 전력망 투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한국전력의 재무구조 개선, 현금흐름 확보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이르면 2026년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