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가능항공유(SAF) 혼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항공업계는 2035년까지 SAF 혼합 비율을 최대 10%까지 늘려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SAF는 폐기름, 동·식물성 유지, 농업 부산물 등 친환경 원료로 만든 항공유다. 생산 과정에서 일반 항공유보다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 가량 줄일 수 있어 항공 업계에선 가장 실질적 탄소 감축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SAF는 일반 항공유에 비해 3배 가량 비싸기 때문에 1% 혼합 의무화 때 국내 항공업계 추가 비용부담은 약 900억 원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를 3%로 늘리면 연간 3천억 원이 넘고, 10%로 늘리면 1조 원 안팎의 항공유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항공 업계는 정부가 유럽연합(EU) 등 해외 다른 나라에서 SAF 활성화를 위한 투자세액 공제, 인센티브 지원 등 구체적 지원 대책 없이 SAF 혼합 의무화 제도를 시행하는 것에 대해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지속가능항공유 혼합 의무화에 항공업계 비용증가 불가피, 정책지원 없이 '항공료 인상 자제하라'는 정부

▲ 대한항공 직원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지속가능항공유(SAF)가 담긴 병을 들어보이고 있다. <대한항공>


22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의 SAF 혼합 의무화 제도 시행으로 국내 항공사들의 유류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9일 SAF 혼합 의무화 제도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에 SAF 1% 혼합을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 3~5%, 2035년부터 7~10%로 혼합 비율을 늘리기로 했다.

국내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은 연간 급유량의 90% 이상을 출발 공항에서 급유해야 한다는 규정도 신설됐다. 급유 의무를 미이행하면 과징금이 부과될 예정이지만, 유연성 제도를 통해 전체 이행량의 20% 범위 내에서 3년까지 이월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SAF가 기존 항공유보다 3배가량 비싸다는 점을 고려하면 항공사들의 유류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SAF를 1% 혼합 시 국내 항공사들이 부담해야할 추가 비용은 연간 920억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국내 최대 항공사 대한항공의 경우 유류비 부담이 연간 45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30년 SAF 혼합 비율이 3%까지 확대되면, 항공사들이 떠안게 될 추가 비용은 3200억 원까지 불어난다. 

국토부 측은 지난 19일 의무화 제도를 발표하면서 “SAF 혼합 의무화 제도 운영 초기에 비용 상승으로 인한 항공운임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국토부 측은 추후 혼합 비율이 크게 늘어나는 2030년을 전후로 항공업계 경영 여건, 사회적 공감대, 국제 동향 등을 검토해 추가 비용의 운임 반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당분간 SAF 혼합 의무화에 따른 비용을 항공업계에 부담시키고, 요금 인상을 막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부 결정은 SAF 혼합 의무화 제도가 가장 빠르게 활성화된 EU가 SAF 투자세액 공제, 인센티브 지원 등 항공 업계 정책 지원을 병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EU는 SAF 사용에 따른 비용 증가를 환경 비용 분담금(Environmental Cost Surcharge) 명목으로 항공 운임에 포함시키도록 허용하고 있다. 독일 루프트한자의 경우 2025년부터 최소 1유로에서 최대 72유로를, 프랑스의 에어프랑스-KLM은 1~12유로를 SAF 사용에 따른 환경비용 분담금으로 부과하고 있다.
 
지속가능항공유 혼합 의무화에 항공업계 비용증가 불가피, 정책지원 없이 '항공료 인상 자제하라'는 정부

▲ 2024년 9월1일 대한항공과 에쓰오일이 인천과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을 정기 운항하는 여객기에 지속가능항공유(SAF)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인천국제공항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에쓰오일>


국내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SAF 의무 사용에 따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운임 인상이 불가능하다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항공 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SAF 시설 투자 세액 감면, 인센티브 지원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19일 발표된 청사진에서 제시된 정책 지원이 구체화되길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SAF를 1% 혼합하는 수준에서는 항공사에 미치는 비용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면서도 “혼합비율이 증가하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정부와 항공업계는 여러 요인을 고려해 당분간 운임을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SAF 1% 혼합으로 인한 비용 상승은 항공사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항공사들의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향후 혼합 비율 확대 수준에 맞춰 운임 인상에 대해서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최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