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8월20일 베이징에 위치한 생명공학 기업을 방문해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은 전기차에서 배터리와 소재를 비롯한 공급망을 다진 뒤 기술을 향상시켜 세계 시장에 영향력을 급속히 키웠는데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도 이러한 성장 전략을 구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비롯한 한국 기업도 반도체 제조 강점을 바이오의약품 부문에 이식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지만 신약 개발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 바이오의약품 업계가 공급망을 장악하고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는 모습이 전기차 성공 방식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닛케이아시아는 미국외교협회(CFR) 자료를 인용해 “중국은 2023년 세계 복제약(제네릭) 공급망의 80%, 페니실린 생산의 90% 등 제약산업 공급망을 장악했다”고 평가했다.
중국 당국은 2015년 이후 규제 개혁과 ‘중국제조 2025’ 정책을 통한 국가 주도 투자를 확대해 산업 전환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에 더해 중국 바이오의약품 기업 12곳은 올해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수십억 달러에 육박하는 대규모 자본 조달에도 성공했다.
중국 제약사는 복제약을 생산하고 임상 시험을 수행하며 축적한 공급망 역량을 바탕으로 항암제와 희귀질환 치료제 등 신약 후보 물질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앞서 중국 헝루이제약은 7월28일 글로벌 제약사 GSK로부터 최대 120억 달러(약 17조6천억 원)를 투자받고 12개 신약 후보 물질을 공동 개발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 내 임상시험을 등록한 약품의 70%가 신약으로 나타났다.
미국외교협회 또한 중국이 전 세계 차세대 치료제 후보 물질 가운데 23%를 보유하고 있다고 집계했다.
중국 BYD와 지리자동차 등은 저가 공세로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60% 안팎까지 점유율을 늘린 뒤 충전과 배터리 등 기술 경쟁력을 높였는데 바이오의약품 업계가 유사한 성장 궤도를 밟고 있는 셈이다.
의료업체 시그넷테라퓨틱스의 장하이셍 최고경영자(CEO)는 닛케이아시아를 통해 “중국 생명공학 산업은 전기차와 비슷하다”며 “공급망을 구축해 똑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바이오리액터홀에서 반도체 클린룸과 같이 방진복과 모자, 마스크를 작용한 직원들이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중국 당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카드로 내세웠는데 의약품 공급망도 새로운 협상 타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록 양국은 10월30일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농산물 관세를 철회했지만 희토류 수출 통제나 상호관세는 1년만 유예한 상황이라 앞으로 의약품 공급망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하원 미중전략특위 위원장인 존 물레나르 공화당 의원은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무기화할 의지를 보였다”며 “의약품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중국 바이오의약품 업계의 전기차 성과 재현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한국 기업의 전례를 떠올리게도 한다.
삼성전자은 반도체사업을 통해 쌓은 생산시설 관리와 공정관리, 효율개선 등 능력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사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의 미세공정과 클린룸 관리 노하우를 이식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스위스 론자와 중국 우시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약 개발’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사업은 궤도에 올렸지만 공장을 확대하고 수율을 높이는 제조 사업 특유의 방식만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1일 인적 분할로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출범시켰고 이를 중심으로 신약 사업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워뒀다.
요컨대 중국 바이오의약품 업체가 공급망 장악력을 바탕으로 신약 물질까지 넘볼수록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같은 업체에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닛케이아시아는 중국 전기차 업계가 최근 과도한 출혈 경쟁을 보이는 것처럼 바이오 의약품 또한 내수 경쟁으로 정체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