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캐즘'에 이민정책 부담 가중, "현대차 K배터리 투자 위축 불가피"

▲ 미국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지원을 축소하고 관세를 높인 데 이어 이민정책도 강화하며 현대자동차와 한국 배터리 3사의 투자 위축이나 지연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정부의 전기차 지원 혜택이 곧 폐지된다. 이를 계기로 수요가 뚜렷하게 위축되며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 전반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 규제 강화로 미국 공장 건설과 운영에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해진 점도 현대자동차와 한국 배터리 3사의 투자 축소를 이끌 수 있는 원인으로 꼽힌다.

워싱턴포스트는 9일 “미국 8월 전기차 판매량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관련 업계에 험난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그동안 정부가 전기차에 제공하던 최대 7500달러(약 1040만 원) 상당의 세금 혜택이 10월부터 사라지는 데 대비해 구매를 서두르고 있다.

전기차 지원 정책 폐지가 발표된 뒤 단기간에 수요가 몰린 기저효과와 가격 부담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한동안 큰 폭의 판매 감소 추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의 수요 호황은 장기간 이어질 정체 국면을 앞두고 정점에 이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롤러코스터와 같은 전기차 업황 변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전기차 수요 증가세는 바이든 정부에서 대규모 지원 정책을 도입한 직후와 비교해 이미 약세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가리키는 전기차 ‘캐즘’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뒤 여당인 공화당과 힘을 합쳐 세제혜택을 폐지하면서 수요 침체기는 더욱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2029년 미국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 비중이 25%로 예상됐으나 현재 전망치는 12%로 절반 미만까지 떨어졌다는 조사기관 콕스오토모티브의 분석을 전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도 전기차 캐즘에 더 무게를 싣는 원인으로 꼽힌다. 전기차 특성상 내연기관 차량보다 주요 부품의 수입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부품 수입관세 인상으로 제조사들의 자금 부담이 커진 점도 전기차 생산 설비에 투자를 줄이거나 건설을 늦추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빅3’ 제조사로 꼽히는 포드와 GM, 스텔란티스는 최근 잇따라 전기차 공장 구축 계획을 미루거나 축소하고 내연기관 차량에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반면 현대차를 비롯한 미국 이외 기업들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에 대응하고 미국에서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기차 생산 설비에 꾸준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미국 '전기차 캐즘'에 이민정책 부담 가중, "현대차 K배터리 투자 위축 불가피"

▲ 포드와 SK온 합작법인 블루오벌SK의 전기차 배터리공장 조감도(왼쪽) 및 GM과 LG에너지솔루션의 오하이오주 배터리 합작공장.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도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수요가 점진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상해 순차적으로 신규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전기차 지원 폐지와 수입관세 인상에 이어 비자 및 이민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며 미국에 투자하던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변수를 맞이하게 됐다.

미국 이민당국은 최근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현지에 건설중인 배터리 합작공장을 대상으로 대대적 단속을 벌여 300여 명이 넘는 한국인을 구금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당국과 논의를 거쳐 구금된 근로자들을 한국으로 출국시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 및 협력사들이 미국 공장 건설과 장비 설치에 필요한 인력을 파견하는 일은 당분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배터리 제조사의 한 관계자는 “한동안 미국 출장과 관련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과 미국 정부 사이에 비자 관련 문제가 합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사들은 이미 세액공제 종료 및 관세 문제를 겪고 있었다”며 “이미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신분 문제가 새로 불거진 것”이라고 바라봤다.

해당 기업들이 이미 미국 내 생산 설비 구축을 지연시키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추가로 리스크를 안게 되면서 더 큰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숙련된 기술자들이 이번 단속을 계기로 단기간의 미국 체류조차 주저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미국 공장의 건설 속도를 늦추고 비용은 늘어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컨설팅 회사 롤랜드버거도 뉴욕타임스에 제조사들이 현재 상황과 관련한 딜레마를 안게 된 만큼 트럼프 정부 이민정책은 현재 건설되는 공장의 완공 지연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을 전했다.

이는 현대차와 한국 배터리 3사가 이미 미국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는 시기를 늦춰 재무 부담을 키우고 성장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가 해외 기업들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강경한 이민정책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할 것이라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전문지 더힐은 “현대차 공장에서 벌어진 사태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들이 서로 상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를 장려하는 것과 상반되는 행보”라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