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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대혼란⑦] 롯데백화점 판매직과 직접 대화 불가피해지나, 정준호 노조 달래며 갈 길 더 바빠진다](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9/20250918133908_15667.jpg)
▲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사장이 노조 현안과 투자 확대라는 이중 과제를 짊어지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근거로 사용자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대규모 외주 인력을 활용해온 롯데백화점도 이런 흐름을 계속 피하기만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사장은 경쟁사들의 공격적 투자 공세에 대응해야 할 시점에 노사 현안까지 떠안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의 움직임을 보면 백화점 본사가 외주 판매직과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는 입장 뒤에 숨어 있던 백화점 본사의 태도가 노란봉투법에 따라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개정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원청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 노동자도 교섭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사용자’의 범위를 넓혔다. 노동 조건이 바뀌는 사안도 정리해고와 같이 쟁의 사유로 인정하며 쟁의행위로 생긴 손해를 놓고 사용자가 무분별하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 가운데 백화점과 면세점 업계에서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첫 번째다. 백화점 매장 판매의 상당 부분을 입점 브랜드 협력회사 인력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판매직의 노동 조건 전반이 원청인 백화점 본사의 방침에 따라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영업시간과 매장 환경, 고객 응대 매뉴얼, 휴게 공간 등 대부분이 본사의 정책과 관리 범위 안에 있어 본사가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호텔롯데, 호텔신라 등 12개 주요 유통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 해태'에 대한 구제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8월14일 행정법원에서 최종 변론을 마쳤으며 1심 선고는 오는 10월30일로 예정돼 있다. 사용자 범위가 확대될 경우 본사를 직접 교섭 테이블에 끌어내려는 노조의 전략은 더욱 힘을 얻게 된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로레알, 록시땅, 샤넬코리아, 엘코잉크, 클라랑스코리아, 한국시세이도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여 만들었다. 현재 백화점과 면세점에 입점한 브랜드사들을 상대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는 8월25일 성명을 통해 “노동조합법 개정은 원청이 사용자 책임을 부정하며 교섭을 회피해온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전환점”이라며 “이제 백화점과 면세점은 협력업체 노동자와의 교섭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이번 노란봉투법이 달가울 리가 없다.
법에 따르면 근로계약을 맺지 않은 기업이라도 노동 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사용자’로 간주된다. ‘협력업체 소속 직원’이라는 이유로 한발 물러나 있던 백화점 본사까지도 직접 교섭 요구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백화점들은 매장 내 판매직의 임금이나 근로조건 같은 민감한 사안을 협력회사 책임이라고 보고 거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통과로 이런 관행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1위 롯데백화점을 이끄는 정준호 사장의 어깨도 한층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롯데백화점은 노사 현안뿐 아니라 투자 확대 압박까지 동시에 맞닥뜨리고 있다.
![[노란봉투법 대혼란⑦] 롯데백화점 판매직과 직접 대화 불가피해지나, 정준호 노조 달래며 갈 길 더 바빠진다](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9/20250918134105_278928.png)
▲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 협력업체, 백화점면세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5월21일 간담회를 진행했다. 사진은 정혜경 진보당 의원(앞줄에서 맨 오른쪽),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장(롯데백화점 대표) 사장(앞줄에서 맨 왼쪽). <정혜경 의원실>
반면 롯데백화점은 눈에 띄는 투자 활동이 최근 거의 없었다. 서울 잠실점과 강남점 등 서울 강남권 핵심 점포의 재단장 계획도 사실상 멈춰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본점 리뉴얼을 앞세워 ‘타운화 전략’을 가동한 만큼 롯데백화점도 공격적 투자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롯데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주요 백화점 3사 가운데 유일하게 수익성 개선에 성공했다. 다만 이는 투자 성과라기보다는 비용 축소의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롯데쇼핑 백화점 사업부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5615억 원, 영업이익 1911억 원을 냈다.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은 2.1%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9.9% 늘었다.
물론 정준호 사장이 노조 관계에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전부터 노조와 소통을 넓히려는 시도를 이어오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 5월21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주최한 간담회에 직접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노동조합과 현장 판매직들은 감정노동 보호 장치 부재, 매장 냉방 문제, 화장실 사용 제한, 축소된 휴게 공간, 불규칙한 연장근로와 정기휴일 미준수 등 현장의 고질적 근무 환경을 조목조목 짚어냈다.
이에 정 사장은 “본사가 생각하는 기준이 실제 현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선 노동자에게 돌아간다”며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또한 대응 방안 구상과 백화점 협회에 의견 전달을 약속했다.
다만 노란봉투법으로 노동조합이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고용노동부는 원청이 모든 하청과 교섭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용자성이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라는 표현이 다소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범위까지 백화점의 책임이 인정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결국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쌓여야 기준이 선명해질 수 있다.
여기에 원청과의 직접 교섭이 가능해지더라도 적지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사용자성 판례를 바탕으로 전문가 논의와 현장 의견 수렴을 거쳐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교섭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없다”며 “산업별 적용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는 만큼 세부 사항이 확정되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