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동통신 사업자 요금제 운용 원칙은 '가입자가 경쟁사와 비교하지 못하게 하라'

▲ 이동통신사들이 요금제 운용 원칙을 '경쟁사와 비교하지 못하게 하라'에 둬 가입자들을 '호갱' 취급하는 처사란 지적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이동통신 요금제가 총 몇 종이야?

이동통신 3사 사장이나 담당 임직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답이 나올까.

사석에서 미리 물어본 바에 따르면, "모르겠다"가 가장 솔직한 답이다. 기자 물음이니 순발력 있게 둘러댄다면, 요금제 종류는 "글쎄 한 500~600종 쯤 될까" 정도로 얼버무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경쟁 사업자는 뭐라고 해?"라고 되물으며 화제를 슬쩍 돌릴 게 뻔하다.

이동통신 사업에서 요금제는 상품이다. 사장은 물론이고 담당 임직원들조차도 현재 팔고 있는 상품이 몇 종이나 되는지를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서다.

이동통신 사업자별로 요금제가 각각 수백 종에 달하는데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장롱 요금제'라서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수 있다.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수진 의원(국민의힘)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이 날 기준 이동통신 3사가 운영 중인 요금제는 718종이다.

이 가운데 지금도 신규 가입 신청을 받고 있는 요금제는 251종이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들을 말을 종합하면, 가입자가 없거나 있는 지도 모르는 등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이동통신 요금제 종류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동통신 3사와 알뜰폰 사업자 것까지 다 합치면 수천 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실제 가입 신청을 받고 있는 요금제 종류는 과기정통부 국정감사 자료에 담긴 것보다 훨씬 적다. 한 이동통신 유통점 관계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한 이동통신사 임원은 "월 정액요금으로 나뉘고 이런 저런 조건이 붙으며 종류가 불어나서 그렇지, 압축하면 사업자별로 10여종 안쪽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들은 가입자도 없고, 가입도 받지 않을, 이동통신 마케팅 담당자는 물론 유통점들까지도 있는지도 모르는 요금제를 왜 이렇게 많이 갖고 있을까.

이동통신 3사 마케팅 담당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가입자와 언론 등이 어느 사업자 요금제가 가입자에게 더 유리한 지를 비교·분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한 이동통신사 전직 마케팅기획 임원은 "새 요금제를 설계하거나 마케팅용으로 앞세울 때는 두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소비자 부담 상한선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가입자당 매출을 극대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쟁 사업자 요금제와 절대 비교 불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 등이 같은 조건의 3사 요금제를 비교·분석할 때 결코 높게 보이면 안된다. 또한 특정 사업자 요금제가 유리하다는 기사가 나오면 즉각 같은 조건의 다른 우리 요금제가 더 유리하다며 반박하거나, 없으면 바로 만들어 내놔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이동통신사 유통점 직원은 "여기에 각종 할인 조건까지 붙이면, 소비자는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가운데 어떤 게 자신한테 유리한지 절대 판단할 수 없고, 유통점 직원이 권하는대로 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제 대다수가 '소비자 선택 방해' 목적의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양산된 요금제는 국가간 이동통신 요금 비교 결과에 물타기를 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몇 해 전 우리나라 소량 이용자들의 이동통신 요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과기정통부가 즉각 비교 대상 사업자의 '장롱 요금제'를 내보이며 반박에 나섰다. 하지만 해당 요금제 가입자 수는 '0명'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는 동일 이용량 기준으로 5G 요금제보다 비싸게 책정된 LTE 요금제가 공개돼 '요금 역전' 논란이 일어, 과기정통부와 이동통신사들이 진땀을 뺐다. 당시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가입자가 없고, 지금은 가입 신청도 안되는 요금제인데"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지적을 근거로 'LTE·5G 통합 요금제'를 내놓기로 했다. 올 상반기 KT를 시작으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사업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아직까지도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이동통신 사업자 요금제 운용 원칙은 '가입자가 경쟁사와 비교하지 못하게 하라'

▲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앞줄 왼쪽 첫 번째),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김영섭 KT 사장(오른쪽에서 첫 번쨰)이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2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난해 국정감사서 내놓겠다고 밝힌 세대 통합 요금제가 왜 아직까지 출시되지 않고 있느냐'는 질타가 이어졌는데, 과기정통부와 이동통신사들 모두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이동통신사들의 '소비자 선택 방해'란 요금제 설계 원칙에 따라 이동통신 요금제는 수백~수천 종으로 추산될 정도로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가입자의 눈길을 끌어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요금제는 찾아볼 수 없는 꼴이다.

그럼 요즘 가입자들의 눈길을 끌만 한 요금제는 어떤 모습일까.

21일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내가 산 데이터는 내 소유 아니냐. 쓰다 남은 것은 이월해 사용하거나 지인이나 이웃에게 선물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이렇게 못하게 하고 소멸시키느냐. 가입자 재산권 침해 아니냐'고 따졌다.

이동통신 가입자 쪽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지점을 건드리는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아내는 월 2만9천 원짜리(선택약정할인과 결합할인 등 받아 실제 내는 요금은 2만5천원 미만) 요금제를 쓴다. 당연히 데이터가 따름따름한데, 사실상 무제한 요금제를 쓰고 있는 아들이 매달 1기가씩 선물해주는 것으로 데이터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선물 가능 데이터량이 월 1기가로 제한돼 있다. 반면 아들은 대다수 달에서 월 정액요금으로 산 데이터를 소진 못해, 상당량은 그냥 소멸되고 있다고 한다.

소진 안 돼 소멸되는 데이터를 가계통신비 부담 때문에 비싼 요금제를 쓰지 못해 데이터 부족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께 선물해 동영상 등을 맘껏 보실 수 있게 한다면?

하지만 박 의원의 질의에 과기정통부 차관과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은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또 있다.

한 이동통신사 부사장급 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이동통신사들이 AI를 강조하고 있지 않냐. AI 기술을 활용하면, 가입자로 하여금 이동통신 요금제와 각종 부가서비스와 멤버십 등을 골라 가입하고 이용하게 할 수 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에서 음료나 식사를 고를 때 샷이나 속재료 등을 추가하고 사이드 메뉴를 따로 고르게 하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요금제도 가입자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언제까지 가입자들을 '호갱'(호구+고객) 취급 할 거냐"고 덧붙였다.

이 임원은 "안타깝게도 마케팅부문 등 해당 사업부서 쪽은 관성을 버리지 못해 실적 악화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이런 의견에 반발한다"고 전했다.

가입자 선택을 훼방놓는 요금제는 즉각적으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고객이 아니라 호갱 취급을 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