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양곤 HLB그룹 회장(사진)이 HLB와 HLB생명과학 합병을 철회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계열사 HLB사이언스와의 합병 카드를 꺼낸 것을 둘러싸고 안팎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 HLB >
이번에는 코넥스 상장사 HLB사이언스를 흡수해 항암제 중심이던 파이프라인을 감염·퇴행성 질환으로 확장하겠다는 청사진을 내세웠다.
다만 두 회사 합병을 둘러싸고 HLB사이언스의 기업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체적으로 코스닥 이전상장을 추진하던 HLB사이언스의 로드맵은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19일 HLB에 따르면 회사는 파이프라인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워 HLB사이언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HLB는 17일 HLB사이언스와 흡수합병을 결정했다. HLB사이언스는 패혈증 치료제 DD-S052P, 알츠하이머 치료제 D-A279 등 펩타이드 기반 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보유하고 있다.
HLB 측은 “연구개발 집중도를 높이고, 파이프라인을 고도화해 운영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현재 핵심 파이프라인인 표적항암제 ‘리보세라닙’으로 세 번째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도전하고 있는데, 이에 따른 기업가치 변동성이 큰 만큼 다른 후보물질을 확보해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합병은 앞서 무산된 HLB와 HLB생명과학 합병 사례와 비교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당시에는 합병에 반대하는 HLB생명과학 주주들에 지급해야 할 주식매수청구대금이 HLB가 설정한 상한선인 400억 원을 넘어서면서 합병이 불발됐다.
반면 HLB사이언스의 시가총액은 17일 기준 300억 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HLB사이언스 지분 HLB글로벌(33.11%), HLB생명과학(26.67%), HLB바이오스텝(7.31%) 등 HLB계열사가 약 67.76% 지분을 들고 있어, 반대 주주 지분을 전량 매입하더라도 부담이 크지 않다. 이에 이번 합병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 조항도 두지 않았고 합병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코스닥 이전상장을 기대했던 HLB사이언스 주주들은 결국 HLB 주주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HLB사이언스는 2020년 코넥스에 상장한 뒤 꾸준히 코스닥 이전상장을 추진했다. 2022년 상장 주관사를 선정하고 2024년 기업설명회에서 2025년 코스닥 이전을 목표로 내세웠다. 코스닥은 코넥스보다 시장 규모가 크고 자금 조달과 거래 유동성, 기업 인지도 제고 측면에서 유리하다.
최근 주요 파이프라인인 패혈증 치료제의 임상 1상이 완료돼 코스닥 이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는 시점에 합병이 결정되면서 진양곤 HLB그룹 회장의 판단이 계열사의 독립적 기업가치 상승 가능성을 꺾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합병으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HLB그룹이 강조해온 계열사 협업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HLB사이언스는 한 달 전 HLB펩과 항균 펩타이드 치료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 HLB그룹은 HLB사이언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놓고 성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합병 시점과 비율을 둘러싼 의문도 제기된다. HLB사이언스는 7월 미국·프랑스에서 핵심 파이프라인인 패혈증 치료제 DD-S052P 임상1상을 완료하고 8월 최종 결과 보고서(CSR)를 수령했다.
임상2상 진입과 글로벌 기술 이전 추진을 앞둔 시점에 합병이 결정되면서 임상 성과가 기업가치에 반영되기 전, 저평가된 상태에서 흡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가치가 오른 뒤 합병하려면 HLB의 주식매수청구권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사전에 합병을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HLB그룹 측은 이에 대해 "성장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밝혔다. 단순 협업 체계만으로는 글로벌 무대에서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HLB그룹 관계자는 "HLB사이언스가 신약 개발의 본격적 글로벌 경쟁 단계에 들어선 만큼, 단순히 코스닥 이전 상장으로 자금 조달과 기업가치 제고를 꾀하기보다는 HLB과 합병으로 자본력·임상개발 역량·글로벌 네트워크를 결합하는 게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HLB는 글로벌 임상과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신약 개발 전문 인력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HLB가 주도적으로 HLB사이언스의 파이프라인을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측면도 있다"며 “일원화 의사결정 구조로 글로벌 파트너십과 기술 수출 협상에서도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