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리포트 9월] 한미일 vs 북중러,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9/20250904113600_187924.jpg)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3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튿날 오전 김 국무위원장이 드디어 톈안먼(천안문) 망루에 올라섰다. 오른편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 너머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섰다.
시 주석은 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에서 이처럼 양쪽 옆에 러시아와 북한 최고 권력자가 자리잡도록 했다.
북·중·러 정상이 톈안먼 망루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59년 중국 건국기념일 열병식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 마오쩌둥 중국 주석,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와 함께 선 이후 66년 만이다.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는가.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도날드 트럼프 행정부까지 중국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수없이 공언했던 자유무역 질서를 ‘국가 안보’를 이유로 헌신짝처럼 차버렸다.
한국은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에 이어,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 흐름 속에서 한미동맹에 힘을 싣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격동하는 국제무역질서 속에서 한일 협력을 위해 일본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지난달 말 이재명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잇달아 3박6일 일정으로 방문한 것은 한국 외교의 기본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게 자연의, 아니 외교의 기본원리일까.
한국, 미국, 일본이 가까워지자 북한, 중국, 러시아가 뭉치고 있다.
이들은 각각 미국을 상대로 ‘항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관세협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맞상대를 하는데 쉽지 않다. 북한은 따로 말할 것이 없고.
이렇게 북·중·러 정상은 3일 오전 톈안먼 망루에 함께 올랐다.
하지만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갑자기’ 본격화한 동서냉전, 그 속에서 한미일 대 북중소(당시는 중국이 아니라 중공,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의 대립 구도는 명확했다.
지금은 66년 전에 견줘 적어도 세 가지가 다르다.
첫째, 한국은 그때의 한국이 아니다.
한국은 1965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37위의 저개발국가였다. 같은 해 대일청구권 대금으로 받은 3억 달러가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그런데 2024년 GDP 기준 12위까지 올랐다.
군사력 순위는 2025년 기준 글로벌 파이어파워(GFP) 평가에서 세계 5위에 올랐고, 아시아에서 일본(8위)도 제쳤다.
한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힘을 갖고 있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한국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우선 외교’ 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가 말한 국익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분명히 들어있다.
둘째, 중국이 그때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1958~1962년) 실패 이후 가난의 구렁텅이에 떨어져 있었다. 더구나 1966년 시작돼 10년 동안 이어질 문화대혁명을 통해 더욱 깊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기껏 잠자는 호랑이였던 중국은 이제 세계 경제 2위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미국도 이제는 중국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중국의 성장을 두려워하며, 패권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서슴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은 이제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다. 유럽, 중동, 남미, 아프리카 시장과 깊게 얽혀 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와 함께 브릭스(BRICs)를 이룬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전쟁을 벌이면서 브라질과 인도를 자극하자, 두 나라는 중국과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냉전은 단절을 바탕으로 펼쳐졌다. 상대편을 괴물로, 사탄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불어닥친,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무역 질서 속에서 중국은 외부와 단단히 연결돼 있다.
중국도 냉전 시대의 고립과 진영간 대립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이미 중국 경제와 사회가 그렇게 변했다.
셋째, 미국이 그때의 미국인지 의문이다.
물론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행보를 두고 평가와 전망이 많이 엇갈린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반러시아, 반도체 관련 반중국, 핵문제 관련 반북한 등 명확했다. 이를 현실 속에서 관철할 힘이 있느냐는 다음 문제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푸틴 대통령을 알래스카에서 만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맺은 신뢰관계를 자랑하고 있다. 중국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대중국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려 하진 않는다.
이런 변화된 상황을 종합하면 이번 북·중·러 정상의 회동을 보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신냉전 국면이 다시 펼쳐질 것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물론 한중, 한러 관계를 풀어야 하는 한국으로선 좀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남북관계 발전의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동북아 정세가 격변, 급변하고 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한국 외교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무엇이 국익인지, 국익을 어떻게 추구할지, 시민들의 더 많은 토론과 관심이 필요해졌다. 안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