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들이 금융감독원의 약관 개선 압박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보험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이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상당히 몸을 사린 것으로 알려졌다.
▲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 |
현성철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
차남규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 등은 윤 원장과 만나 즉시연금이나 암보험 등과 관련한 언급을 최대한 피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지급권고를 사실상 거부하며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회사들이 즉시연금 지급 규모나 방식을 놓고 윤 원장에게 관련 의견이나 건의사항을 전달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현 사장과 차 부회장 모두 별다른 전달사항이 없었다고 짧게 대답한 것이 전부다.
현 사장은 8월 말 금융권 채용 박람회에서도 이 사안과 관련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당시 즉시연금 사태와 관련한 질문에 “채용과 관련된 자리여서 (대답하기) 적절치 않다”며 “나중에 따로 얘기하다”고 선을 그었다.
보험사들이 금감원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내놓는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법적 다툼이나 향후 감독당국과의 관계에서 결코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원장이 약관과 관련한 문제로 보험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현 사장이나 차 부회장 등 국내 보험사 수장들이 금감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시연금 사태가 약관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고 금감원이 판단한 것에서 시작된 만큼 약관 개선을 강조하는 것은 곧 즉시연금 문제에 관한 윤 원장의 우회적 '경고'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윤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보험사의 약관이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며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보험업계는 아직 소비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보험은 가입은 쉽지만 보험금 받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고 약관도 내용 자체가 불명확해서 민원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험업계가 소비자 시각으로 상품 개발, 영업, 보험금 지급 등 업무 전반을 혁신해 소비자 중심의 경영 패러다임을 확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금감원과 보험사는 원칙만 강조하면서 현안의 즉문즉답을 회피하고 팽팽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금감원이 그동안 꾸준히 '약관 간소화'를 요구했던 만큼 보험사들이 다소 억울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일부 상품의 약관을 놓고 "최대한 광범위한 단어를 사용해서 약관 분량을 축소하라"는 금감원의 지시를 받아들여 애써 고치고 승인까지 받기도 했는데 이제 와서 약관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소비자 보호를 가장 큰 의무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약관 설정을 놓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만큼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