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금융권에 따르면 GM은 한국GM 노사가 20일까지 자구계획에 합의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겠다는 강수를 두면서 산업은행의 자금 지원을 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한국GM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표면적으로는 차입금 3조 원 이상을 빌려준 GM 본사가 산업은행보다 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산업은행도 보유한 한국GM 주식 17%의 가치가 없어지고 GM 본사에서 한국 사업을 접는 것을 막을 방법도 사실상 사라진다.
한국GM이 법정관리를 통해 청산되거나 생산시설 폐쇄 등 사업 규모를 크게 줄이면 직원 1만5천 명 가운데 대다수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GM의 협력 부품회사와 원자재·부자재 납품회사 등에서 일하는 사람도 최대 30만 명에 이른다. 한국GM 생산공장이 있는 인천(부평공장)과 경상남도 창원, 공장폐쇄가 이미 결정된 전라북도 군산, 협력회사 수가 많은 대구와 경상북도 등 지역사회에 미치는 여파도 크다.
이렇게 되면 산업은행이 한국GM의 2대주주인데도 관리와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이 회장이 한국GM의 법정관리를 막기 위해 사전에 꺼낼 수 있는 카드의 수도 많지 않다. 산업은행이 한국GM의 채권기관도 아닌 상황에서 노사협상에 개입하기도 힘들다.
이 회장이 금호타이어의 해외자본 유치를 추진할 때 노조 관계자들과 직접 협상했듯 한국GM 노조와 만나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산업은행은 난색을 나타내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한국GM 노사의 자구계획안 협상은 산업은행이 손댈 수 없는 문제”라며 “이 회장이 한국GM 노조와 만나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그럴 이유가 없고 설령 만나서 해결책을 이끌어낸다 해도 GM 본사에서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만약 한국GM 노사가 20일 전에 자구계획안에 합의하더라도 이 회장은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 등 세부사항을 놓고 GM과 충돌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GM은 한국GM에 빌려준 3조 원을 출자전환할 뜻을 보여왔는데 최근 이 계획을 철회하고 돈을 더 빌려주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한국GM의 경영악화 책임을 대주주인 GM에 물어 20대1 이상의 차등감자를 요구한 것을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산업은행이 한국GM의 생산시설 매각 등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에 거부권(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인 지분율 15% 이상을 지키려면 GM에서 차등감자를 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자산 처분을 막을 비토권을 계약으로 보장받고 있었지만 2017년 10월에 기간이 끝났고 이제는 지분율을 확보하는 방법밖에 없다.
이 회장이 금호타이어와 STX조선해양 구조조정에서 보여준 ‘독자생존’ 원칙론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에서 '선 실사 후 지원'의 태도를 바꿔 한국GM에 자금을 곧바로 지원할 가능성도 낮다.
이 회장은 13일 기자들에게 “GM이 한국GM에 빌려준 돈을 출자전환하는 데에 따른 올드머니(기존 자금)는 들어갈 이유가 없다”며 “올드머니는 GM의 책임이라 (산업은행은) 단돈 1원도 못 들어간다”고 못박았다.
이 회장은 20일경에 나오는 한국GM의 경영실사 중간보고서를 토대로 GM과 협상을 GM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사 과정에도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 회장은 5월 초에 나오는 경영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GM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는데 GM은 27일을 산업은행의 투자확약 시한으로 요구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GM이 이전가격 등 원가에 관련된 핵심 자료를 아직 내지 않고 있다”며 “최대한 빨리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27일 전에 경영실사가 끝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