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존엄사법의 시범사업을 진행함에 따라 말기 환자들이 직접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연명치료와 보험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만큼 존엄사가 기존 취지에 어긋나지 않도록 보험과 관련한 감시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2009년 6월23일 오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방식의 존엄사가 시행됐다. 사진은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뒤 사망에 이르는 김 할머니(77)를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 <뉴시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는 병원에서 존엄사를 선택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10월23일부터 시범사업이 실시된 지 하루만인 24일 처음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환자가 나왔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한 사람은 30여 명을 넘어섰다.
존엄사법은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관한 법률)이 정식 이름으로 지난해 2월 통과됐다. 2018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이 법에 따르면 말기 또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과 혈액 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의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다. 환자들은 연명의료계획서를 적고 의사에게 질병 상태와 치료방법, 변경·철회절차 등을 설명받은 뒤 서명해야 한다.
이에 따라 환자의 삶과 죽음은 선택의 문제가 됐다.
이때 선택기준의 하나인 ‘비용’에 보험사가 개입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오리건주의 한 민영보험사는 생명연장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생명을 이어갈 가능성이 극히 적다'며 보험 지원을 거부했다. 반면 존엄사를 위해 필요한 약값만 지원해주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오리건주 이후에 존엄사가 법으로 허용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도 치료 가능성이 극히 미미한 환자에게 보험사가 화학치료 보험료를 부담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보험사들의 보험청구 거부사례가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존엄사법은 환자의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이익다툼이 환자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연명치료 비용은 장례비용 등 호스피스 비용보다 5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의 한 방법으로 존엄사법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현재 ING생명과 알리안츠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은 자살에도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존엄사가 실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는 가족 2명 이상이 진술하면 존엄사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법원에서 법률 취지에 상반되는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하는 모든 경우에 정부가 만든 심의기관을 거쳐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의료비용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에게 존엄사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모든 압박을 충분히 검토한 뒤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