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제제는 사람 혈장을 정제해 생산된 의약품을 말한다. GC녹십자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올해 1~3분기 GC녹십자 별도기준 매출 9416억 원 가운데 32.5%를 차지했다.
허 사장이 혈액제제 미국 출시를 위해 가장 무게를 두는 부분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현장 실사를 통과하는 것이다. 현장 실사는 의약품이 적정한 기준에 따라 생산되는지 점검하는 절차다.
GC녹십자는 지난해 4분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충북 오창의 혈액제제 생산시설에 대한 비대면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초 FDA는 현장 실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최종보완요구서(CRL)를 통보했다. 비대면 평가가 현장 실사를 대체하기 충분치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FDA의 현장 실사가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영향이 아직 남아있어서다. FDA는 해외 현장 실사를 2019년 3310회에서 2021년 206회로 대폭 줄였다. 2022년 들어서는 해외 실사가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전 수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허 사장은 이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현장 실사를 가장 우선적으로 진행한 뒤 혈액제제 판매허가(BLA)를 다시 신청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FDA도 같은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판매허가 신청 후 현장 실사를 받지만 허가를 심사하는 6개월 안에 현장 실사와 심사를 병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수 있어서다. 현장 실사를 먼저 진행하면 문제점이 나올 경우 판매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보완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GC녹십자는 이런 방침을 바탕으로 현장 실사 일정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FDA와 지속해서 논의하고 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모의 실사도 진행하는 중이다.
허 사장은 실사 준비에 힘쓰는 동시에 혈액제제 미국 출시에 성공했을 때를 대비한 판매 전략도 수립했다. 현지 전문약국(Specialty Pharmacy) 채널을 중점적으로 공략해 매출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전문약국은 일반 약국과 달리 복잡한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고가의 치료제를 주로 다루는 약국을 말한다. 단순히 약물을 제공할뿐 아니라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한 홈케어 서비스로 다양한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2019년 기준으로 미국 혈액제제시장의 약 50%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됐다.
GC녹십자는 도매업자와 거래하는 대형병원, 전국 단위 영업인력이 필요한 개인병원 등과 달리 전문약국 채널에서는 소수 영업인력만으로 영업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 사장은 앞서 2015년 11월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5%의 미국 허가를 신청하면서 본격적으로 혈액제제 미국 진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조공정 관련 자료 미비로 인해 FDA의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이후 농도가 더 높은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로 방향을 바꿔 허가절차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허 사장은 2021년 2월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의 미국 허가를 신청했을 당시 “이번 BLA 제출은 자국 바이오의약품사업의 미국시장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한 큰 도약을 의미한다”며 “세계 시장에서 이미 인정받은 제품력을 기반으로 미국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의미 있는 치료 옵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미국 혈액제제시장 규모는 2016~2021년 연평균 12%씩 성장해 지난해 96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GC녹십자는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 출시 지연과 별개로 미국 혈액제제시장 전망이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본다. 원재료를 공여자에게 의존하는 특성상 단기간에 공급이 증가하기 어렵고 제조과정이 복잡한 만큼 진입장벽도 높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혈액제제 미국 진출 여부가 GC녹십자 기업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GC녹십자에 대해 "아이비글로불린에스엔주 10%의 FDA 실사가 지연되면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성장 동력의 부재에 대한 우려만 남아있다"며 "혈액제제의 FDA 승인 및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의 중국 보험 급여 등재가 예상되는 2023년 말 투자매력이 부각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