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이 11월3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 남쪽 아왈리에서 열린 회담에서 대화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프란치스코 교황이 현직 교황 최초로 인구의 70%가 무슬림인 바레인을 찾아 이슬람 세계와 소통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레인 도착 일성으로 사형을 금지하고 인권 침해를 멈출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일(현지시간) 바레인 사키르 공항에 도착한 뒤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이 주최하는 환영행사 연설에서 "나는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처벌받는 사람을 포함해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바레인은 한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다가 2017년부터 재개했다. 유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집행해 국제 인권단체와 서방국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앞서 교황청은 2018년 가톨릭의 핵심 가르침을 담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어떤 경우에라도 사형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가톨릭 교회는 수 세기 동안 일부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는 사형을 인정해왔으나 이러한 기조는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사형제 전면 반대 내용이 포함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한 뒤 사형을 절대 불허해야 한다는 태도를 여러 차례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종교의 자유는 완전해야 하며 단순히 예배의 자유에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바레인은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아랍권에서 종교 문제에 관용적 태도를 보이는 나라로 알려졌다. 바레인에는 1939년 문을 연 걸프 지역 최초의 가톨릭 교회이자 아라비아 반도 최대의 가톨릭 교회인 아라비아 성모 대성당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2011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뒤 야당 인사들을 박해하는 수단으로 종교가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할리파 국왕 등 바레인 왕가는 수니파지만 바레인의 무슬림 인구 가운데 60∼70%는 시아파다.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과 야당 인사 중에는 시아파가 많았다. 바레인은 2011년 반정부 시위를 이끌던 시아파 지도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권은 침해되는 것이 아니라 증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많은 노동 현장에서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고 이는 심각한 사회 불안과 불러온다"며 "어떤 곳에서든 노동은 안전해야 하고 인간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바레인의 이웃나라인 카타르에서 월드컵 개최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논란이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바레인 방문은 할리파 바레인 국왕의 초청에 교황이 응해 성사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이라크를 방문해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와 회담하기도 했다.
교황청 관계자는 "교황은 이슬람 세계와 통하는 새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일 할리파 바레인 국왕이 주관하는 '대화를 위한 바레인 포럼: 인류 공존을 위한 동서양' 폐막식에서 연설한다.
이번 포럼에는 이집트 최고 종교기관 알아즈하르의 대 이맘이며 수니파 이슬람의 최고 권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아부다비에 본부가 있는 무슬림장로회의 관계자들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200명이 넘는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5일 바레인 아왈리에 세워진 아라비아의 성모 대성당에서 초교파적 기도를 이끈다. 바레인에 거주하는 가톨릭 신자 수는 약 8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인도나 필리핀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일인 6일에는 마나마에서 주일 삼종기도에서 주교들과 신자들과 만나 기도하는 것을 끝으로 바레인 일정을 마무리하고 로마로 귀국한다. 김남형 기자